국민 검색 네이버가 요즘 연일 상생 정책을 내놓기 바쁩니다. 7월 인터넷 생태계 상생방안을 내놓고 벤처펀드 조성에 1000억원을 내놓는다고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무려 스무 개 가까운 상생방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2일에도 전국 1만여 개 나들가게(동네 소규모 슈퍼마켓) 통합검색과 지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상공인 지원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부동산사업 철수에서부터 맛집, 패션, 여행 등 콘텐츠정보 사업철수, 중기 및 소상공인 상생협력기구 설립 등 가히 상생정책 '대방출' 수준입니다.
인터넷 골목상권 침해로부터 시작된 이래 공정위 독과점 조사와 정치권의 '네이버 규제법'발의, 국감 등이 맞물리면서 네이버의 잰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죠. 조만간 검색, 뉴스스탠드 등의 정책이 대폭 바뀐다는 얘기도 빠르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장과 인터넷 벤처산업계 반응이 여전히 싸늘하다는 점입니다.
인터넷 생태계를 키우며 더불어 잘 살아가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에 대한 벤처산업계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은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네이버가 이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최근 몇 년 사이 유망 벤처기업이 투자유치 시 기관투자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바로 수퍼갑 '네이버 진출' 문제입니다. 기관투자자들에게 벤처기업의 사업성은 네이버 진출 가능성 여부에 초점이 맞혀진 지 오래입니다.
8·90년대 재벌들이 납품 제안을 해온 유망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용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중소기업의 납품 제안기술과 제품샘플을 부품 계열사에 넘겨 리버스엔지니어링(분해해 기술을 파악하는 기법)으로 베껴 생산하는 '기술훔치기' 수법이 2000년대 들어 네이버에서 횡행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 벤처산업계가 사업제안이나 M&A 관련해 네이버와 담을 쌓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년쯤 됩니다. 아직도 네이버에 이런 제안을 하는 벤처 CEO는 멍청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 둘 중의 하나라는 게 이 바닥의 정설이죠.
기관투자자들의 이 같은 잣대는 숱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터득한 감별법입니다. 삼성, LG에 당했다며 몇 년간의 소송 끝에 모든 걸 잃고 망연자실한 중기사장의 가슴 아픈 기술강탈 수법은 네이버의 수십,수백개 비즈니스모델 곳곳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녹아 있는 것이죠. 최근 네이버가 철수하겠다고 밝힌 사업들이 다 이 같은 비슷한 메커니즘을 거친 후 다시 토해낸 사업모델들이 대부분입니다.
몇 해전 네이버는 정치인 안철수가 대주주로 있는 안랩이 하고있는 바이러스 백신솔루션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안랩, 안철수는 회사 존폐가 달렸다며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고 네이버의 무차별적인 사업진출에 대한 대국민 여론전에 나선 바 있습니다. 네이버는 역풍을 맞았고, 결국 비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무료 공급을 철회한 바 있습니다.
만약 안랩, 안철수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거나, 무명의 CEO였다면 지금 안랩은 사라졌거나, 생존해도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일 거라는 게 CEO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천하의 안랩이라도 하루 수천만 명이 드나드는 네이버 정보자료실에서 주력 제품이 공짜로 풀리는데 어찌 버틸수 있겠습니까? 안랩이 이 정도일 진대, 나머지 업종의 무명 기업이 당했을 '청천벽력'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네이버에게 바이러스 무료백신은 공짜로 정보자료실에 풀면, 일정규모의 트래픽을 만들어주고, 이를통해 검색광고 매출을 더 만들어줄 숱한 아이템중의 하나일 뿐인 거죠. 네이버 문제가 벤처산업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네이버의 스탠스가 벤처생태계 복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벤처산업계를 둘러 보십시요. 90년대말, 2000년대초 그 숱하게 많던 온갖 콘텐츠와 깜찍발랄한 솔루션 업체들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 사이트가 문을 열었다고 언론을 장식했건만, 지금 살아남은 업종은 오픈마켓의 인터파크와 지마켓, e러닝업체 메가스터디, 동영상서비스업체인 한국판 유튜브, 판도라TV 정도입니다.
물론 여전히 벤처산업계를 대표하는 넥슨, 엔씨소프트,휴맥스,다산네트웍스 등 벤처 대표주자들은 업종이 다른 게임이나 하드웨어 장비업체들이죠. 게임업종만이 유일하게 포커,고스톱으로 커온 네이버 한게임에 대항해 글로벌 규모로 성장한 유일한 산업입니다. 포커와 고스톱을 서비스해온 한게임이 네이버 수익모델의 핵심이었다는 사실 역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입니다.
물론 벤처산업계가 몇몇 대표주자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업종이 피폐화한 현실이모두 네이버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터넷 벤처산업계는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입니다.
지금 네이버에게 필요한 것은 기관투자자들이 "만약 그렇게 된다고 가정할 때 몇 년후 네이버에 인수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벤처캐피탈들이 유망 벤처기업 CEO들에게 '네이버에 인수될 가능성' 을 점치며 투자에 나서는 진정한 '상생 투자'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추진중인 인터넷 벤처산업계 생태계 복원은 사실 네이버 문제를 얼마나 정교하고, 공정하게 시장친화적으로 풀어내느 냐에 달려있습니다.
벤처생태계의 황소개구리, '오 마이갓 네이버'가 가 아니라, 산업계가 네이버를 보고 방긋웃는 '굿모닝 네이버'가 돼야 합니다. 그게 바로 네이버도 살고, 인터넷 벤처산업계도 함께 살수 있는 길인 거죠. 혹시 네이버가 자사 업종에 진출할까 10년간 숨죽이며 살아온 인터넷 벤처산업계가 왜 아직도 제대로 가슴을 펴지 못하는 지를, 네이버는 진심을 갖고 살펴야 합니다.
네이버 전문 경영진의 잇따른 기자회견에 대해 왜 벤처산업계가 진정성 문제를 거론하는 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몇번의 발표에 10년간 숨죽인 벤처산업계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일 것입니다.
네이버 상생정책의 본질은 바로 '진정성' 입니다. 인터넷 벤처산업계가 이구동성으로 이해진 대주주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그것도 진정 가슴을 열고 말입니다. 마침 10월 4일, 오전 11시, 과천 미래창조과학부가 인터넷 검색서비스 발전을 위한 권고안 브리핑을 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