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검색 네이버가 최근 석달 간 쏟아낸 상생정책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7월 인터넷 생태계 상생방안을 내놓고 벤처펀드 조성에 1000억 원을 출연한다고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무려 스무개에 가까운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부동산사업 철수에서부터 맛집, 패션, 여행 등 콘텐츠정보 사업철수, 중기 및 소상공인 상생협력기구 설립 등 가히 상생정책 '대방출'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행보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인터넷 벤처산업계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는 점이다.
더불어 잘 살아가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에 대한 벤처산업계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은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네이버가 이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최근 몇 년새 기관투자자들이 유망 벤처기업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들에게 벤처기업의 사업성은 항상 네이버 진출 가능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8,90년대 재벌 기업들이 납품 제안을 해온 유망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소기업의 제품 샘플을 계열사에 넘겨 리버스엔지니어링(분해해 기술을 파악하는 기법)으로 베끼는 '기술훔치기' 수법이 2000년대 들어 네이버에서 횡행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인터넷 벤처산업계가 사업제안이나 M&A 관련해 네이버와 담을 쌓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년쯤 된다.
아직도 네이버에 이런 제안을 하는 벤처 CEO는 멍청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 둘 중의 하나라는 게 이 바닥의 정설이다.
기관투자자들의 이 같은 잣대는 숱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터득한 감별법의 일종이다. 최근 네이버가 철수하겠다고 밝힌 사업들이 다 비슷한 메커니즘을 거친 후 다시 토해낸 사업모델들이 대부분이다.
몇 해전 네이버는 정치인 안철수가 대주주로 있는 안랩이 하고있는 바이러스 백신솔루션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안랩, 안철수는 회사 존폐가 달렸다며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고 대국민 여론전에 나선 바 있다. 네이버는 역풍을 맞았고,결국 비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무료공급을 철회한 바 있다.
안랩, 안철수가 무명이었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천하의 안랩이라도 하루 수천만 명이 드나드는 네이버 정보자료실에서 주력 제품이 공짜로 풀리는데 어찌 버틸수 있겠는가? 안랩이 이 정도일 진대,나머지 업종의 무명 기업이 당했을 '청천벽력'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네이버 문제가 벤처산업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네이버의 스탠스가 벤처생태계 복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 벤처산업계를 둘러보라. 90년대 말, 2000년대초 그 숱하게 많던 온갖 콘텐츠와 깜찍발랄한 인터넷 업체들은 온데간데 없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 사이트가 문을 열었다고 언론을 장식했건만, 지금 살아남은 업종은 오픈마켓의 인터파크와 지마켓, e러닝업체 메가스터디, 동영상서비스업체인 판도라TV 정도다.
물론 벤처산업계가 몇몇 대표주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이 피폐화한 현실이 모두 네이버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게 벤처 CEO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금 네이버에게 필요한 것은 기관투자자들이 유망벤처기업에 "만약 그렇게 된다고 가정할 때 몇 년후 네이버에 인수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VC들이 유망 벤처기업에 '네이버에 인수될 가능성' 을 점치며 투자에 나서는 진정한 '상생 투자'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인터넷 벤처생태계 복원은 사실 네이버 문제를 얼마나 공정하게 시장친화적으로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
벤처생태계의 황소개구리, '오 마이갓 네이버'가 가 아니라, 산업계가 네이버를 보고 방긋 웃는 '굿모닝 네이버'가 돼야 한다.
혹 네이버가 자사 업종에 진출할까 10년간 숨죽이며 살아온 인터넷 벤처산업계가 왜 아직도 제대로 가슴을 펴지 못하는지를, 네이버는 진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네이버 상생정책의 본질은 바로 '진정성'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