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드라마가 시작되면 다짐 하나를 한다. 비판 혹은 찬사를 하지 말자고.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매번 그런 다짐은 속절없이 무너졌다.‘논란 백화점의 작가’‘선정성과 자극성의 대가’‘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막장 드라마’ ‘막가파 드라마’‘징계와 퇴출의 아이콘’‘조기종영 요구받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가 앞에서. 그 작가의 드라마가 너무 막장이고 시청자에 미치는 폐해가 매우 강하기에 이번에도 그 다짐은 허망하게 무너진다. 요즘 수많은 시청자와 네티즌의 광고제품과 협찬 불매운동, MBC의 연장반대 서명, 작가 퇴출요구 청원을 촉발시키고 있는 MBC 일일극‘오로라 공주’의 작가 임성한이다.
이런 움직임은‘오로라 공주’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임성한 작가의 첫 연속극 ‘보고 또 보고’가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내용도 없이 늘리고 또 늘리다 신문사 방송 담당기자가 뽑은 ‘올해의 최악의 드라마’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5년 동안 매번 반복돼온 풍경이다.
네 명의 여자를 거친 아버지와 네 명의 배다른 자식의 이야기를 다룬 엽기적인‘온달 왕자들’(2000년)에서부터 ‘인어 아가씨’‘왕꽃 선녀님’‘하늘이시여’‘아현동 마님’‘보석 비빔밥’‘신기생뎐’, 그리고 수많은 중요 출연자가 이유도, 개연성도 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중도하차 하는 황당한‘오로라공주’(2013년)까지 임성한 작가의 모든 연속극은 예외 없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를 받거나 시청자와 시민단체로부터 퇴출 압력을 받아왔다. 오죽했으면 드라마의 왕국 SBS 관계자는 ‘신기생뎐’방송 직후 임성한 작가의 작품을 방송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을까.
임성한 작가는 개연성 없는 부실한 스토리,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와 일관성 없는 캐릭터의 급변, 진부한 사건과 갈등기제, 상투적인 플롯을 기본으로 하지만 선정성과 폭력성, 자극성, 엽기성이 매우 강한 막장 드라마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었다. 그리고 그 막장의 지평을 더욱 더 자극적이고 보다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 나날이 확장한 장본인도 바로 임성한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성한 작가 등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막장 드라마에 대해 “막장 징후는 사회가 막장일 때 설득력을 발휘한다. (드라마 스토리의) 막장현상이 지배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한국이 막장이기 때문이다”는 아주대 노명우 교수의 막장 사회와 막장 드라마의 연계성 진단이나 “한국 방송시장 구조는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험난한 길에서 고스란히 한계를 드러냈다. 한국 방송은 내수시장에 안주했다. 그 결과가 막장 드라마다”는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문화산업 상황과 막장 드라마의 관계 분석도 일리는 있다.
또한 사람들은 욕구나 내면적 본능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도덕이나 규범에 막혀 행동에 제약을 받는데 임성한 드라마 캐릭터들은 욕망에 지나치게 충실하고 부끄러움 없이 자극적 행동을 거침없이 해 대리만족을 준다. 황당한 무속과 종교, 강변하는 음식 정보, 드라마를 통한 작가의 실시간 자기 합리화 등 자극적 흥미를 유발하는 임성한 드라마의 장치도 유효성은 있다.
그렇다고 자극성과 선정성, 그리고 폭력성으로 브레이크 없는 무한질주를 거듭하며 시청자의 정서를 황폐화시키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소한 지켜야할 상식마저 무참히 무력화시키는 임성한의 막장 드라마는 비판의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드라마의 개연성이나 완성도는 실종된 채 오로지 자극과 선정, 그리고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욕망으로만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는 임성한의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진화에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 한류에도 악영향이다. 무엇보다 임성한의 막장 드라마에 재현된 텍스트와 이미지, 캐릭터를 통해 인식의 근간을 형성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끔찍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사실 미드(미국드라마)야 말로 막장이다. 한국 기자들은 미드는 완성도 높고 우리 드라마만 후진 걸로 쓴다.”임성한 작가가 쓴‘오로라 공주’극중 대사다. 이 대사를 쓴 임성한 작가에게 한마디 하겠다. 기자들이 드라마를 트집 잡고 후진 걸로 여기는 한국보다 막장 드라마가 제작되는 미국에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는 게 본인이나 우리 시청자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