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가 일동제약의 2대 주주로 올라서며 적대적 M&A 가능성이 높아지자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도 시장원리에 따른 중소 제약사의 구조조정을 원해 M&A가 제약업계의 화두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2일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녹십자는 지난 16일 개인 투자자가 보유한 일동제약 지분 12.57%를 인수, 보유 지분이 27.49%로 늘었다고 공시했다. 특수관계자인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셀도 각각 0.88%와 0.99%의 지분을 취득, 녹십자는 모두 29.36%의 지분을 확보했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등 최대주주 지분이 34.16%로, 2대 주주인 녹십자와의 지분율 차가 5%내로 축소되면서 일동제약은 사실상 적대적 M&A에 노출되게 된 셈이다.
일동제약은 21일 “녹십자의 명분 없는 적대적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녹십자는 적대적 M&A가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동제약은 오는 24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지주사 전환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지분 10% 가량을 보유한 피델리티가 녹십자의 손을 들어줄 경우 지주사 전환은 사실상 물건너간다.
제약업계에서는 녹십자의 적대적 M&A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녹십자는 과거 상아제약과 경남제약을 인수해 되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는 게 제약업계와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녹십자가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한 점이나 지분 매입비용 436억원 가운데 374억원을 외환은행과 씨티은행에서 차입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일동제약도 “녹십자의 이번 지분 매입 전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면서 “(지주사 전환을 위한) 임시주총을 앞둔 시점에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기습적으로 변경한 것은 그 의도를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한다면 취약했던 일반의약품 라인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염두에 둔 녹십자는 오랜기간 일동제약 인수를 추진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군소 제약사에 대한 M&A가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부가 오는 2017년 10대 제약강국 도약을 위해 자발적 구조조정을 원하고 있는 만큼, 대형 제약사의 군소 제약사 사냥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한독은 태평양제약의 제약사업부문을 575억원에 인수, 소화기계 및 근골격계 중심의 제품군을 강화하는데 성공하는 등 제약업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