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이후 곧바로 공항 내에 마련된 장소에서 선수단은 해단식과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대회기 인수 기자회견을 가졌다. 행사장에서 선수들에게는 단 10분의 질의응답 시간만이 주어졌고 30여분에 달하는 시간은 이른바 체육계와 관계 인사들의 인사말로 채워진,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 해단식이었다.
어차피 매번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있었던 연례행사다.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귀국한 선수단은 해단식 이후 귀가하지 못한 채 방송 출연을 위해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이후에도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도 귀국 후 행사 종류와 장소만 달랐을 뿐 메달리스트들은 해단식 후 곧바로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이번 소치올림픽 이후에는 좀 더 특별했다.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에 대해 직접 말할 기회조차 없이 단지 형식적인 질문에 짧은 답변만을 해야 했고 이른바 ‘높은 분들’에 의해 주도된 해단식에 철저하게 들러리를 섰다. 그나마 몇 차례의 질문에서는 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쇼트트랙 ‘박승희’를 ‘박상희’라 호칭하는 어이없는 한 방송국 PD의 질문에도 답변해야 했다. 진행자가 “박상희 선수요?”라고 라고 묻자 “네, 박상희 선수요”라며 친절히 확인까지 시켜줬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날 귀국한 박승희를 비롯한 쇼트트랙 선수들과 이상화, 이승훈 등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곧바로 다음날부터 열리는 동계체전을 위해 제대로 여독을 풀지도 못한 채 경기장으로 향해야 했다. 물론 몇몇 종목에서는 경기 전 기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경기만 뛰지 않았을 뿐 경기 직전까지 연습은 모두 소화했다.
도저히 짬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상화, 이규혁, 신다운 등 서울시청 소속팀의 선수들은 지난 달 27일 서울시에서 준비한 토크콘서트에 출연했다. 이상화는 불과 하루 뒤인 지난 달 28일에는 곧바로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동계체전 1000m에 출전해 우승했다. 이승훈은 더 혹독한 스케줄이었다. 지난 달 27일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 출전해 일반부에서 우승했고 1일에는 1500m에도 출전해 또 한 번 1위를 차지했다. 이승훈과 함께 소치올림픽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철민과 주형준 역시 대학부 1500m에 출전했다.
소치동계올림픽은 이미 폐막식이 끝난 지 일주일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올림픽은 진행중이다. 올림픽을 치른 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하나다. 바로 휴식이다. 선수들 중 일찌감치 올림픽 경기 일정을 마친 선수들은 하나 같이 현지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하루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는 지극히 소박한 소망을 나타낸 바 있다. 높은 분들은 선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대체 왜 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선수들의 뜻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일까.
앞으로도 메달리스트들을 중심으로 수 많은 방송 출연이 줄을 이을 것은 분명하다. 선수들에게 그치지 않고 선수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소치올림픽은 이미 끝났지만 그들의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잠깐의 관심이 사라지면 다시 다음 올림픽에서 같은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사진=최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