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시 조정에서는 율곡의 우려가 과한 것으로 보고, 이를 무시했다. 만약 이때 율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10년 뒤의 임진왜란, 50년 뒤의 병자호란에서 겪은 그토록 참혹했던 전화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미래예측을 하는 이유는 ‘10만 양병론’처럼 국가적 위기나 사회적 위험에 대한 준비와 예방 차원에서 하는 것이고, 먹거리 창출 같은 경제발전 전략과 함께 미래의 국가 비전도 제시해서 이의 실현을 위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가장 유명했던 미래예측은 앨빈 토플러가 1980년 출판한 ‘제3의 물결’이란 저서를 통해 정보화 혁명이 20~30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꼽는 경우가 많다. 그의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이미 정보화 사회에 깊숙이 진입해 있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처럼 개별적인 퓨처리스트의 예측 말고, 정부 차원의 미래예측이 시작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소련에 대한 군사적 대응 같은 안보전략을 위해 수립된 미국의 ‘랜드 연구소’를 효시로 보고 있다. 이 연구소를 통해서 미래예측의 방법론인 시나리오 기법과 델파이 기법이 고안되었고, 70년대 이후 일부 국가로 미래연구가 퍼졌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1979년 미래전략 수립을 위해 정부기구인 ‘국가정보위원회’를 설치했고, 스웨덴은 1973년 총리실 산하에 미래연구부를 두었고, 뉴질랜드는 1980년 국가미래위원회를 설립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 지구상의 모든 정부는 각국의 특수한 입장과 함께 놀랍게 빠른 과학기술의 변화, 불확실성의 증대, 기후변화, 자원고갈 등 구조적인 미래 과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전략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통일에 대비해야 하고,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만의 창조적 발전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래전략의 필요성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노태우 정부 때 ‘21세기위원회’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역대 정권마다 제각기 다른 명칭의 기구를 설치하고 중장기 국가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곤 했지만, 정책 과정에 반영되지 않아서 그저 장밋빛 청사진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또 대통령 5년 단임제 때문에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장기적 정책이 정권교체에 따라서 폐기되거나 5년 안에 승부를 보려는 단기 정책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인 녹색성장의 경우 기후변화 등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미래 과제를 다루어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지속적인 추진이 기대되었으나, 정권교체에 따라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를 안타까워하는 지적이 많다.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율곡의 ‘10만 양병론’은 하루아침에 이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10년 동안 추진해서 10만의 병사를 키워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단에서 벗어나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전략을 의회에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최근 제시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지난 2월 4일의 본회의 연설이 대표적이다. 헝가리, 핀란드, 이스라엘은 이미 국회 차원에서 미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또 그동안 정부의 미래전략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취합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를 수립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삶에 녹아들지 못하는 실천성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어왔다. 국민들의 참여를 촉진하고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대의기구가 이를 주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제 국회가 국가의 미래비전을 만들고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