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 혜택으로 자금 너무 많이 몰리자 비조합원 대출 확대 고유 업무영역 흔들
농·수협 단위조합, 산림조합,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을 통칭하는 상호금융기관은 은행 문턱이 높아 이용하지 못하는 서민과 중소영세기업이 조합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다시 조합원들에게 대출하는 공동체 조직이다.
이에 따라 상호금융은 기존 금융기관과는 다른 ‘관계형 금융’ 방식의 영업이 권유되고 있다. 관계형 금융이란 담보와 신용등급 등을 이용하는 기존의 표준화·계량화된 대출 심사 및 관리가 아니라 개인과 기업주에 대한 신뢰, 채무자의 평판, 성실도 등 정성적인 정보를 적극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금운용에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금융기관으로서는 이 같은 관계형 금융에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협동조합에 뿌리를 둔 상호금융기관은 정체성과 발전을 위해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특히 관계형 대출의 경우 기존 신용평점을 이용한 심사형 대출보다도 고객정보를 더 많이 모을 수 있으며 기존 예금고객을 대상으로 대출을 실시할 경우에는 리스크는 낮추고 수익성이 높은 융자수단이다.
◇우리나라 관계형 금융 미약한 수준 = 그러나 우리나라 상호금융의 관계형 금융의 수준은 미약하다는 진단이다. 상호금융기관들이 관계형 금융을 활성화하기보다 손쉬운 담보 대출에 의존하거나 은행과 다를 바 없는 정형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상호금융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경쟁력도 떨어진다.
관계형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관계형 금융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중소서민금융기관으로서 관계형 금융을 위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또 이에 필요한 대출 심사와 사후관리를 담당할 수 있는 직원들의 역량 배양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성적 정보 활용한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 정비해야 = 아울러 감독기관은 중소서민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관계형 금융을 통한 신용대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성적 정보를 이용한 관계형 대출에 대한 자산분류 등 검사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 영세기업에 대한 자산건전성 분류 시 연체 등 현재의 재무상황만이 아니라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기술력, 성장성 있는 재산내역, 미래 현금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담보 및 보증이 없는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대출은 고객과의 오랜 관계에서 적립된 정성적 정보를 이용해 이뤄져야 하므로 재무정보 외에 상호금융기관이 이용한 정성적 정보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 또는 사회단체 중심으로 기금을 조성해 상호금융기관에 저리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관계형 금융을 확대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관계형 대출은 대출심사에 유용한 정성적 정보의 식별, 관련 정보 축적이 필요한 것은 물론 사후적으로도 밀접한 모니터링이 필요함에 따라 높은 비용이 발생한다. 또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으로 구성된 조합의 경우에는 건전성 유지에 필요한 수준의 출자금 확충 및 조합원의 자금수요를 충족시킬 정도의 예탁금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조합원에 대한 원활한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해 정부 또는 사회단체 등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정부나 사회단체가 저소득층 자금 수요자에게 직접 저리의 자금을 공급하기보다는 이들의 금융수요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상호금융조합에 예금 또는 출자 등을 통해 저리자금을 제공함으로써 대출금리가 인하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 상호금융의 대출에 대한 위험관리를 위해 은행과 상호금융기관을 포함한 관련 금융권 간의 대출 관련 정보 공유 및 통합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이밖에도 저신용자 등 서민에 대한 소액대출 활성화를 위해 중앙회를 중심으로 서민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상호금융의 역할과 영업 기반이 약화된 데는 금융당국의 불필요한 규제와 형평성에 어긋난 제도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당국이 은행에 적용하는 규제를 상호금융에도 적용하는 등 업계 특성과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이 문제로 지적된다.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호금융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도록 길을 터주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과세 혜택 폐지 대신 법인세 면제해야 = 일각에서는 상호금융이 일반은행과 경쟁하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세제혜택을 상시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상호금융에 주는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는 대신 조합에 법인세를 면제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호금융이란 신용조합 형태로 조합원을 대상으로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는 상호부조형 금융기관으로, 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예금에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비과세 혜택이 3000만원으로 확대된 이후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조합원과 예금유입이 과도하게 증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소재 지역의 서민과 영세기업 위주로 운영돼야 하는 상호금융이 본래의 정체성을 잃고 일반 은행과 같은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5월 ‘상호금융기관 발전방향 공개토론회’에서 이런 문제의 발단이 상호금융 예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에 있다고 지적했다. 비과세 혜택 때문에 자금이 너무 많이 몰리자 이를 운용하기 위해 비조합원 대출을 확대하는 등 업무영역을 넓혀가면서 본래의 정체성이 희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면 덩치가 작은 상호금융은 예금유치를 위해 은행보다 훨씬 더 높은 수신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이에 이 연구위원은 비과세 예금 혜택을 폐지하는 대신 법인세를 면제해 조합의 비용절감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합 법인세를 면제해 조합의 이익을 늘림으로써 이용고배당을 통해 조합원 모두에게 배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가령, 신협은 2011년 조합이 부담한 법인세가 435억원이나 된다. 이를 아끼면 일부 예금자뿐 아니라 조합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용고 배당 제도를 모든 상호금융에 도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상호금융의 예탁금에 대한 비과세 제도를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법인세와 관련해서는 감면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공동유대 범위 확대하고 상호금융 간 규제 차이 해소해야 = 상호금융의 공동유대(구역) 범위가 대부분 행정구역 기준으로 결정되고 있어 행정구역이 다르면 인근조합에 가입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이에 금융당국은 생활권·경제권 변화를 감안해 상호금융의 영업구역을 재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상호금융은 단위조합 또는 공동유대 설정 시 행정구역 외에 경제권 또는 생활권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현재 대부분의 경우 행정구역만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수 또는 면적 등을 고려하지 않아 조합 간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공동유대 범위 확대 시 같은 시·군·구 내의 행정구역만을 포함하지 않고 인접 시·군·구 내의 행정구역도 포함할 수 있도록 하되 일정 수 이하의 주민이 포함돼야 한다”면서 “또 조합원을 일정 지역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으므로 일정 수 이하의 주민이 포함될 수 있도록 공동유대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조합원 대출 관련 규제 차이로 인한 형평성 문제도 지적된다. 신협의 경우 준조합원 제도가 없다.
이에 따라 비조합원 또는 다른 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대출과 어음할인은 해당 사업연도에 신규 취급하는 대출 등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
이 연구위원은 “우선적으로 상호금융 간 규제 차익 해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상호금융에 현재 신협에 대해 적용하는 바와 같이 비조합원과 간주조합원에 대한 대출을 일정 한도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조합원에 대해서만 예금과 대출 취급이 가능하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조합원에 대해서만 할 수 있지만 대출총액의 20% 내에서 예금 등 담보대출을 할 경우는 가능하다.
한편 신협은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책임을 질 수 있는 조합원과 단순히 신협서비스를 이용하는 준조합원을 구분하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최근 내놨다. 이를 통해 조합원에 의한 경영참여와 경영감시 제고, 신협이용 희망자에 대한 금융혜택 등이 가능할 것으로 신협 측은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