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우리 의원들과 동행하여 베를린 장벽, 괴델리츠 농가, 독일 연방 의사당 등을 돌아보며 독일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비록 관광명소로 변해버린 베를린 장벽이지만,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에 비장감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독일 연방의원과의 대화에서는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고 강한 독일을 만든 독일의 연합정치가 주된 화제였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약 15년 동안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었다. 통일 이후 경쟁력을 상실한 동독 기업들이 수없이 도산했고, 실업자들이 양산됐다. 2005년 독일의 실업률은 11.3%, 실업자는 520만명이었다.
이에 당시 집권당인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는 자기 지지층인 노동계의 희생을 요구하는 ‘하르츠 개혁안’을 받아들여 ‘어젠다 2010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 정책을 보수당의 메르켈 총리가 이어받아 꾸준히 집행함으로써 오늘날 튼튼한 독일 경제의 초석이 되었다. 정파를 뛰어넘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치 엘리트들의 결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독일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연정이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독일은 선거에서 승리한 제1당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한 적이 없다. 연정은 각료 자리를 배분하는 것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끼리 정책을 조율하게 되고, 이렇게 채택된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필자는 독일에서 귀국 직후인 지난 4월 3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를 통해서 독일식 연정정신을 수용해서 내각의 일부(예컨대 환경, 노동, 복지 중의 일부)를 야당이 맡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우리의 정치제도와 문화 속에서 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필자도 잘 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승자 독식의 대통령제 아래서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상대방 정당을 흠집 내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왔다. 이럴 경우 무한경쟁의 세계무대에서 정치가 국가 발전을 견인하거나 뒷받침할 수 없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의 정책도 일부 수용한다면 정국 안정과 정책의 일관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되, 그 이전에라도 연정의 정신을 살리는 정국 운영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독일에서 인상 깊었던 곳 가운데 하나가 동독 드레스덴 도시의 근교에 있는 괴델리츠씨의 농가였다. 대지주였던 괴델리츠씨 가족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군이 동독지역을 점령하고 토지를 몰수하자 서독으로 피난 갔다가 통일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괴델리츠씨 등 서독에서 돌아온 구동독 주민들은 토지를 되찾았지만, 공산 치하에서 고생하던 많은 동독인들은 토지와 건물 등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어야만 했다.
특히 동독주민들은 높은 자리와 좋은 집은 서독인들이 다 차지하고 점령군처럼 행세한다고 여겼고, 서독사람들은 통일비용 때문에 자신들이 희생하고 있다고 여겼다. 괴델리츠씨는 1994년부터 매달 한 번씩 동서독 사람들을 초대해서 각자의 삶을 말하게 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가슴에 쌓인 앙금을 풀도록 했다. 우리 일행이 갔을 때도 이곳에 온 독일인들의 가슴에는 아직까지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상처가 남아있었다.
1990년 통일이 될 때까지 동·서독 사람들은 41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지만, 수백만명의 독일인들이 왕래를 했고 자유롭게 서신교환을 했다. 반면 우리는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66년간 소식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남·북한 사회구조와 환경의 이질감은 독일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4월 1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출국할 당시보다 더 많이 절박해졌다. 우리 정치가 어떻게 국가 발전과 통일을 견인해 낼 것인지, 통일 후에 남·북한 주민들의 정서적 통합, 삶의 질과 행복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이제는 현실성 있는 비전을 제시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