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제안은 공천 여부와 상관없이 두 가지 모순을 안고 있었다. 첫 번째 모순은 기초선거 정당 무공천이 과거 민주당의 당론이었다는 점이다. 즉, 과거에도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 결정한 사안이었는데, 이를 다시금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에 붙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두 번째 모순은 이 문제가 민주당과의 합당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제안을 한 순간, 양측은 더 이상 합당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힘든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합당 과정에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이런 모순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안철수 공동대표다. 본인 스스로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뒤 나중에 말을 바꾼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 사안은 과거보다 더욱 깊은 상처를 안 공동대표에게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번 사안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새 정치’에 관한 문제인 까닭이다.
안 공동대표는 지난 2월 24일 “저희는 정치의 근본인 ‘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민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새 정치를 할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나중에는 “바보 노무현”까지 언급하며 자신이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런데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제안하고, 그 결과 10일 공천하기로 함으로써 본인은 새 정치를 더 이상 주장하기 힘든 상황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정당이 안 공동대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필요성은 상당 부분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 정치인 안철수 개인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정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있다.
먼저 지방선거를 놓고 보면, 기초선거 공천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기초선거 정당 무공천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선거 프레임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그래서 지금처럼 인물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구도의 경우엔 후보자의 지지도가 정당지지율과 연동되기 쉽다. 즉, 기초선거 정당 공천 결정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을 갑자기 끌어올릴 만한 호재가 되기는 힘들고,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트레이드마크마저 사라져 야권 입장에선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50.25%, ‘공천해야 한다’가 49.75%로 나타났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안 공동대표의 새 정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크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천하기로 함으로써 무공천을 선택했던 많은 국민들이 안 공동대표에게서 등을 돌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 공동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공동대표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가 새로운 트레이드마크를 개발하지 못하는 한 그를 필요로 하는 정치 세력은 찾기 힘든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해지게 됐는가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대표직을 던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반성 없이 새로운 돌파구는 열리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국민들은 솔직한 정치인을 바란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