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나는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주부들과 휠체어를 밀며 다가오는 몇 명의 장애인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나름대로 추측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들 ‘주부’와 ‘장애인’이 입을 열면서,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불치의 암을 이겨내고,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용기 있게 열정적 사랑을 좇은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불가사의한 마음이 들곤 했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놀라운 삶을 살았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평범한 사람 당신, 당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라. 젊고 야심찼던 한때는 지극히 짧았으리라. 때론 멋모른 채, 때론 자존심 구긴 채로 마른 땅 밟으며 살아왔을 터. 돌아보면 아찔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고, 위기 아닌 때가 드물었다. 기적이란 말이 아니고서야 지금 자신의 존재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댄 헐리가 보았던 그 놀라운 삶, 그게 바로 당신의 삶이다.
# 2. 작가는 아니지만 나도 몇 년 전부터 댄 헐리처럼 보통사람들의 생애를 기록으로 담는 일을 시작했다. 물론 댄 헐리가 했던 것과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사람들을 만날 때 프로그램을 갖고 만난다는 점, 대신 써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쓰도록 안내한다는 점, 60초가 아니라 몇 개월씩도 걸린다는 점이 다르다. 특수한 계층을 집단적으로 만난다는 것도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내가 만나는 분들은 대개 보통사람 중에서도 특히 아픔이 크고 무거운 분들이 많았다. 장애인도, 장애인 부모들도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불의 사고를 당해 장애 대열에 합류한 중도 장애인들도 있었다. 대부분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도 만나게 되었다.
처음 이들을 만날 때 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 줄 만한 말을 찾느라 고민했고, 그러면서 허둥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게 착각이란 걸 아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남이 잦아질수록 위로받는 건 언제나 나였다. 만남에서 그들은 대부분 울었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들이 울면서 하는 얘기를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이 울고 내가 앉아서 듣기만 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마음이 훈훈하고 따듯했다. 그렇게 거의 매 순간 그들은 따듯하고 그윽했다. 울어서 허탈했는지, 아니면 속이 시원해졌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한동안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가 차츰 내 눈에도 들어오는 게 있었다. 그들이 가진 놀라운 재능이었다. 유독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속도가 빨랐다. 작은 일에도 크게 공감할 줄 알았고, 감춘 눈빛 하나만으로도 타인의 어지러운 심사를 헤아릴 줄 알았다. 그것은 분명 평범한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었다. 축복이 아니고서야!
# 3. 그들도 우리도 모르고 있었다. 댄 헐리가 보았던 놀라운 삶, 그 놀라운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자랑스러운 일인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그게 바로 기적이라는 것. 타인의 고통에 빠르고 순수하게 반응하는 공감능력, 그것이 분명 특별히 부여받은 재능이라는 걸 필시 모르는 것 같았다. 이런 재능 때문에 그들이 세상을 얼마나 따듯하게 만드는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절박하게 반응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축복을 주는 건 신의 영역이지만 그 축복을 인지하는 능력은 사람의 몫이련만 아직도 우리 눈에는 왜 그렇게 부족한 것만 보이고 남의 눈에 대들보만 잘 보이는지. 그걸 깨닫는 건 분명 사람의 영역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