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남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정치학
6·4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본선 후보자 등록도 마감되고 각 정당과 정치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정치와 정부를 향한 국민의 원성이 드높은 가운데 치러지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선거환경이 험난하다. 정치권은 슬픔, 분노, 좌절감, 자괴감 등이 복잡하게 혼합된 민심의 향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행태는 과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기초선거 공천제를 폐지하겠다던 공약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공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후보자를 공천하겠다던 약속도 훼손되었다. 공천에 유권자의 의사를 균형되게 반영하는 장치와 절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새 정치는 말만으로 소란스럽다.
이합집산의 정치 행태도 변함이 없다.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이념과 정책도 하룻밤 사이에 바꾸고 정당을 갈아탄다. 거주 경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에 대한 기여가 전혀 없다시피 한 출향인사가 하루아침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공천을 받는 억지도 여전하다. 외면적으로는 경선으로 포장했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에 밀착된 사람들이 후보자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별반 달라진 점이 없다.
이런 선거 풍토에서 과연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수백 명의 젊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도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이런 후진적 정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때 그때 임시방편으로 위기만 모면하면 약속도, 공언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는 기만의 정치가 그 근본 원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실적만 올리면 된다는 문화가 그 뿌리다.
선거란 것이 무엇인가? 선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정치에 자유롭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독립적인 존재로서 정치 과정에 정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또한 정치와 정부도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획득함으로써 합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갖는 이와 같은 차원 높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선거는 과연 국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는가? 오히려 합법성의 미명 아래 부와 권력을 소유한 부정한 세력에 의해 선거가 악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여 잘못된 제도와 문화를 존속시키는 도구로 전락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오늘 우리의 시국은 비상하다. 지금 우리는 분노와 원망과 무기력으로 좌절하여 혼란과 갈등의 나락으로 퇴보하느냐 아니면 치명적 결함을 과감하게 수술하고 앞으로 전진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4 지방선거는 우리 국민이 결코 무관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정치 과정이다.
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국민은 희망의 끈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과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는 후보자를 가려 선택해야 한다. 성별, 나이, 정당, 학력, 출신지 등 선출직 공직의 본질과 직접 관련 없는 겉치레에 휘둘리지 말고 능력과 자질에 집중하여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최선의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희망과 의욕을 북돋아 주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데 앞장서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주요 정당들은 철학과 소신 없이 헤매고 있다. 나라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말만 믿다가 희생되었는데도 책임지는 공직자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금 진정으로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들을 희구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너무나 심각하고 다급하기에 책임을 회피하거나 체념하거나 탄식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책임감 있고 양식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오각성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목전의 과제가 바로 6·4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일이다. 지역과 나라를 위해, 그리고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수백 명 젊은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6·4지방선거부터 잘못된 과거와 절연된 투표행위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