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승자 없는 선거와 연합정부 -홍일표 국회의원

입력 2014-06-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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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 서유럽에서 연정(聯政)은 일반적 현상이다. 정당들이 이념·계급·종교·지역 등으로 분화되어 있어서 주요 이슈마다 정책이 다르고 유권자들의 선호도 다르기 때문에 주요 정당들조차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연정이 거의 없었던 영국에서도 지금은 보수-자민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2010년 5월 영국의 총선에서 1997년 ‘제3의 길’ 토니 블레어의 등장으로 13년을 이어온 영국 노동당 정권이 무너졌다. 하원의원 650명을 뽑는 이 선거에서 보수당이 306석을 얻어 1당에 올랐고, 노동당이 258석, 자유민주당이 57석을 차지했다. 어느 정당도 326석인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서 단독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기에 주요 정당들은 연정협상에 착수했다.

이때 킹메이커 역할을 하던 자민당이 보수당과의 연정 구성에 합의하면서 보수-자민 연립정부가 탄생했다. 이념적으로 보면 영국의 제3당인 자민당은 보수당과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노동당과의 연정이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서 유럽정책에서 보수당은 영국 중심의 고립주의적 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자민당은 친유럽연합(EU)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이민정책에서도 보수당은 규제를 주장하는 반면 자민당은 개방적이다.

그러나 보수-자민 연정이 출범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1당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영국 국민들의 인식도 있었지만, 재정적자, 아프가니스탄 파병, 유럽 경제위기 등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정적인 정부 구성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도 승자는 없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새누리당은 영남권 수성과 함께 경기도와 인천을 얻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 텃밭과 강원을 지키고 충청권을 확보했다. 전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야간 광역단체장 수가 8 : 9로 승리한 정당 없이 견제와 균형이 이뤄졌다는 평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세부적으로 보면 다른 측면에서도 승자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1·2위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가 경기도가 0.8%, 충청북도 1.1%, 강원도 1.2%, 인천시 1.8% 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 선거제도가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에 승패가 갈린 것이지, 사실상 이들 지역은 절반의 반대를 안고 있는 셈이다. 만약 우리가 내각책임제 국가였다면 지역별 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선거 기간 동안에 정무부지사에 야당 인재를 등용하는 등 ‘작은 연정’을 하겠다고 공약한 것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가 선거가 끝난 뒤 맞상대였던 신구범 전 새정치민주연합 제주지사 후보에게 지사직 인수위원장인 ‘새도정준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미 지난 4월 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독일의 연정을 참고로 우리나라 중앙정부도 내각의 1∼2 자리를 야당에 할애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던 필자로서는 지방정부에서의 이런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연정을 할 때는 정당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움직인다. 첫째는 연정에 참여해서 공직보유를 최대로 늘려서 정부운영과 정책을 담당하는 경험과 인재를 축적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선거패배로 사장되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연합이다.

여기에 더해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은 비상한 정세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공언하고 있는데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전보장회의에서 미국·일본과 중국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것에서 보듯이 동북아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또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소비와 생산 모두 타격을 받았고,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 장기화 속에 수출은 환율 복병을 만났다. 또한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세월호 이전과 전혀 다른 ‘안전한 대한민국’,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주문을 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타개나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정책을 선택하기 위한 지혜의 결집이 요구되고, 나아가 이를 위한 소통의 정치, 통합의 정치가 요구된다. 특히 패배한 정당의 정책도 재평가해서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대통령제 국가로 승자 독식구조 아래 있지만,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안전, 교통, 복지, 환경 등의 정책연합을 못할 이유가 없다. 대구, 부산, 전북 등에서도 ‘작은 연정’에 대한 시도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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