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브랜드

입력 2006-07-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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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대통령=박정희'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할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최소한 중학교 때까지는 그랬다. 자나깨나 뉴스에서 '대통령 박정희'를 접하다 보니 아마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던 모양이다.

10.26이 터졌다. 그 날 이후 '박정희'는 험악한 인상의 독재자로 다시 태어났다. 물론 훨씬 이전부터 '먼저 느낀 사람들'의 항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표면상으로는 그래도 경제재건을 이룩한 '우리의 대통령'에서 하루사이에 독재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동일인 '박정희'가 몇 차례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 문제로 떠들썩하더니 한쪽에서는 동상과 휘호를 떼어내는 '재조명과 투쟁의 역사'는 계속되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창업에서도 살았다 죽었다를 반복하는 아이템이 여럿 있다. 필자는 이를 '박정희 브랜드'라 명명하려 한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브랜드를 'Elvis Brend'라 한다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니까 이렇게 붙여본 것이다.

보리밥 전문점이 그렇다. 지난 92년경으로 기억되는데 무교동에 보리밥 전문점이 처음 생겨났다. 그로부터 한 3년 잘 꾸려가던 이 가게는 이내 문을 닫았는데 97년 IMF 때 다시 회생했다. 그로부터 3년여. 한동안 잘되던 보리밥이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최근들어 다시 전문점들이 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이클이 3년정도 되는 것 같다.

DIY(Do it yourself)점도 유사한 사이클로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93년경 정부 제2 종합청사가 있는 과천에서 소품성(小品性) 가구를 DIY용으로 만들어 팔았던 가게가 큰 히트를 쳤다. 처음에는 매체의 보도에 힘입어 프랜차이즈사업으로 확대해서 들떠 있던 이 가게도 10여개의 가맹점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96년에 가구에서 액세서리로 변신한 DIY가 모습을 드러냈다. DIY액세서리점이 주부 창업자들에게 인기업종으로 부각된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비즈(beads)라 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안정업종으로 자리잡은 종목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된 업종이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체인본사의 부실과 마케팅 부족으로 얼마 안 가서 문을 닫았다. 이러한 DIY가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태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20~30대 커플들이 대부분인 이 커뮤니티에서는 매주 한 두차례 모여 서로의 솜씨를 뽐내듯 멋드러진 가구를 생산해 내고 있다.

전통업종이라 할 수 있는 수선점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동네마다에 수선점이 있었지만 올림픽을 전후해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먹고 살만해 졌다는 증표이리라. 경기가 어려워진 96년경, 수선점은 다시 동네어귀에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보다는 좀더 세련된 인테리어와 서비스로.

이러한 '박정희 브랜드'를 분석해 보면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연(自然)과 향수(鄕愁)'가 그것이다. 그린피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나 동강을 살리자는 캠페인이 연일 보도될 때는 어김없이 박정희 브랜드는 살아났다.

99년 5월 15일, 동강 댐에 반대하는 정선.영월 군민들과 전국 환경.시민단체가 동강에 모여 '동강 살리기 범국민 한마당'을 개최했는데 무려 1만여명이 참여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99년 7월 10일, 일본으로 플루토늄을 수송하기 위해 출발 예정인 영국 화물선 2척이 핵 폭탄 60개를 충분히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핵연료를 적재하게 될 것이라며 일본 핵 운송선 퍼시픽틸 호의 출항을 반대하는 운동이 절정에 달한 날이다.

바로 그 당시, 재생카트리지 사업이나 청소대행업, 재활용서점 가맹점 등과 같은 환경 친화적 사업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들 업종은 공교롭게도 모두 박정희 브랜드다.

향수(鄕愁)는 대체로 불경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97년 11월 30일, 당시 부총리겸 재경원 장관이던 임창열씨는 IMF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다며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로부터 2년여 간 우리는 '춥고 배고픈' 역사를 써야했다. 사람들은 잘 나가지도 않던 동창회에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가족끼리 주말농장을 일궈 나가면서 우애도 얻었다. 경기가 어려우면 이렇듯 향수가 도지는 것이다.

보리밥 전문점과 주말농장이 그렇고 당시 가맹점 모집에 성공한 재활용 서점이 그렇고 패딩점퍼가 다시 유행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동안 취미로만 여겨졌던 손뜨개나 종이 접기 등이 당당히 창업아이템으로 등장한 시기도 모두 이 무렵이다. 모두 향수가 불러온 박정희 브랜드인 셈이다. 박정희 브랜드! 이 사이클만 알아도 실패확률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형석( leebangin@gmail.com)

비즈니스유엔 대표컨설턴트

창업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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