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벼리학교 학생들의 졸업논문집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꽤나 흥분했다. 단언컨대, 그동안 접했던 어떤 책보다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개인적으로 벼리학교를 운영하는 기관과 약간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때부터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벼리에 대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단편적이긴 했지만 이곳의 교육과정과 내용들은 대안교육에 문외한이던 내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다. 아이들이 겪는 새로운 결핍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일컬어 놀이결핍, 자연결핍, 관계결핍이다. 마땅히 벼리의 교육과정은 이 결핍을 채워 나가기 위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가까운 산과 들을 쏘다니며 자연을 체험하고, 뗏목을 만들어 안양천에 띄우고 뱃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음식과 바느질 법을 배우는 것도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졸업하기 전 꼭 한 번은 자기 손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손수 가꾼 채소들로 음식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과정도 일반 학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학교여서 겪고 감내해야 하는 고달픔도 많았다. 학교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부모님들의 헌신이야 당연하다고 쳐도 물질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품이 또한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그렇듯 벼리도 국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공교육 밖에 있기 때문에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인 셈이다. 지난해 비로소 이 같은 제도의 결함을 눈여겨보고 치유하려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안교육 전문가들과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 안양시의원들이었다. 이들은 함께 모여 공부를 시작했다. 현장을 찾아 나섰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토론했다. 마침내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학교 밖 청소년 지원조례’가 탄생했다.
그리고 일주일 전, 벼리는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또 다른 손님을 한 분 맞았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장이 당선자 신분으로 벼리를 찾아온 것이다. 당선자는 차분히 벼리학교를 둘러본 뒤 아이들의 키높이에 맞춘 낮은 책상을 앞에 두고 교사, 학부모들과 마주 앉았다. 이제 막 성년이 되었다는 1회 졸업생들의 근황을 물었고, 한 아이는 일반학교에 또 한 아이는 대안학교에 보냈다는 학부모에게 각각 어떻게 다른지도 물어보았다. 동석한 관계 공무원들에게는 기존의 지원 근거와 방식, 한계에 대해 꼼꼼히 묻기도 했다. 그런 연후에 벼리 학부모들의 선택은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덩치 큰 국가가 움직이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느릴 수밖에 없으므로 지자체가 먼저 나서 적절한 지원방안을 찾아보겠노라고 말했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관찰자 신분으로 볼 때 이날 간담회는 매우 훌륭했다. 우선 학부모들의 자세가 훌륭했다. 그들은 단지 벼리학교를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안양이라는 한 지역에서 매년 학교 밖으로 뛰쳐나오는 1000여 명의 아이들 중 그나마 벼리학교라도 다니는 아이들은 행운아라고 말했다. 더 시급한 나머지 아이들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당선자의 자세도 훌륭했다.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한 학부모들을 향해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격려했다.
그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원하겠다는 당선자의 관심 또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 평가해야 마땅하다. 다만 그의 공언대로 복잡한 상황을 거쳐 언제쯤 어떻게 지원이 되는지는 그의 능력에 관한 문제로 지켜봐야 할 과제다. 기왕에 획일화되고 경직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지원하려는 그 노력, 그 용기가 비단 대안교육 분야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실천되었으면 좋겠다.
용기 있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고단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 외에도 참으로 많다. 다른 곳에도 눈을 돌려 지원하는 일은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그의 용기 있는 행동과 철학을 완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