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광 전(前)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그런데 일본이 지금까지 고용이 호전되는 경우를 보면, 수출증가 또는 재정·금융정책에 의한 생산증가→기업수익·설비투자 증가→고용개선→가계소득·소비 증가의 수순을 밟는 것이 일반적으로 고용개선은 후행지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고용지표가 다른 지표보다 선행하여 호전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일본의 일손 부족은 호경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구문제, 즉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감소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즉 일본경제에 내재되어 있던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가 경기가 약간 호전되자 갑자기 마그마처럼 분출된 결과이다. 그동안 심각한 불황으로 노동력 감소 이상으로 노동수요가 감소하여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가 지하에 잠재되어 있다가, 최근 경기가 약간 호전되자 금방 노동력 부족 문제로 표면화한 것이다. 그동안 말로만 우려해왔던 생산가능 인구감소 문제가 본격적으로 일본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생산가능 인구비율은 1995년 69.5%를 피크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3년에는 62.1%까지 저하하였다. 2013년 생산가능 인구는 6577만명으로 매년 약 100만명 정도씩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일본경제는 소비와 투자의 수요 부족뿐만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이라는 공급 측면에서도 압박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향후에도 생산가능 인구 감소가 지속될 것을 감안하면 일본경제의 고민은 적지 않다. 일본경제연구센터 추계에 따르면 여성이나 고령 노동자가 어느 정도 투입된다 하더라도 2030년에는 생산가능 인구가 5954만명으로 노동력 감소율은 연평균 0.6%이며 이후에는 더욱 가속될 것이라 한다. 따라서 향후 일본경제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노동력 부족이 지속되면 그동안 일본이 고민해왔던 비정규직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가 해소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최근 일본은 시급이 상승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를 경제회생이 아니라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해결하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노동생산성 향상이 임금 상승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귀중한 노동력을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종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용의 유동화가 선결과제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고용유동화를 위한 규제완화 정책은 미온적이다. 때문에 노동력 부족은 단순한 비용 상승 요인으로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노동력 부족은 노동투입 저하를 통해 잠재성장력 저하를 초래한다. 지금도 0%대에 머물고 있는 일본경제의 잠재성장력은 노동투입 감소를 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투입을 늘리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0%대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일본경제는 향후에 임금상승에 따르는 생산성 향상을 달성하지 못하면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일본경제에 미치는 과정을 살펴보면, 불경기 때에는 고용축소·소득감소를 통해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다가, 경기가 회복된 후에는 노동력 부족, 코스트 상승, 잠재성장력 저하 등을 통해 경제를 압박한다. 그 부작용이 이처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생산가능인구 감소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말로는 문제라 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은 미루어왔다. 때문에 정연연장,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활용도 최근에 와서야 논의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도 2016년을 정점으로 점점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본과는 약 20년 격차이다. 그러나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제도의 재설계가 시급한 시점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반면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