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에 과세를 매기는 기업소득 환류 세제에 대한 재계가 반박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사내유보금 과세, 쟁점과 평가: 기업소득 환류세제, 무엇이 문제인가’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기업의 본성을 잘못 파악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권 원장은 “기업의 본성은 수익이 나지 않는 현금자산을 보유하기보다는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데 있다”며 “그런데도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을 대비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 정책의 초점이 정책투명성 확보와 규제개혁에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윤경 한경연 부연구위원이 이 주장을 보완하는 분석자료를 내놓았다. 국내 대기업의 현금보유비율이 외국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세계적 기업정보 제공업체인 뷰로반다이크(Bureau van Dijk)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 250대 상장사의 2012년 현재 국가별 총자산 대비 현금성자산 비율은 한국이 9.18%로 미국 12.49%, 영국 10.37%, 프랑스 13.04%, 독일 13.85%, 일본 16.27%, 대만 20.64%에 비해 훨씬 낮다. 현금성 자산은 현금과 만기 1년 미만의 단기금융상품을 합한 금액이다.
또 2013년 기준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 소속 비금융 상장사의 현금성 자산 비율은 8.04%로 비소속 회사의 11.36%보다 매우 낮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현금성 자산 증가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국제적인 현상”이라며 “보수적 경영이라는 비난에 앞서 기업환경의 불확실성, 특히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상장사는 사내유보율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투자증가율도 2001년 -26.2%에서 2010년 15.6%로 계속 상승해왔고 유보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매출 대비 투자 수준도 높다는 점을 그는 지적했다.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과세 목적과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는데도 사내유보금이 줄면 투자가 늘 것이라는 오류성 전제하에 세제를 재도입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재도입'이라는 말은 1991년 상장사와 비상장사간 주주배당소득에 대한 과세 형평을 맞추기 위해 도입됐다가 이중과세 및 실효성 논란으로 10년만에 폐지된 적정유보초과소득세 때문에 나왔다.
그는 “이론적 한계와 시행 결과를 통해 나타난 문제점들로 인해 폐지된 제도를 이론적 근거나 실증적인 분석 없이 무관한 취지로 재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과거 적정유보초과소득세가 부과됐던 외국기업들이 투자 목적으로 사내에 유보하는 대신 자국의 모회사에 전액 배당하려했던 사례를 들며 “사내유보금 과세를 통해 배당을 늘린다 해도 국내 투자나 소비 증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밖에 “일률적인 유보금 기준은 기업경영의 자의성을 침해한다”, “법인세율의 증가로 볼 수 있어 법인의 해외이주 가능성을 높인다”, “상장사의 외국인, 기관, 대주주 투자비중이 높아 가계소득 증대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요인들을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임금인상을 하면 사내유보 과세에서 공제해준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유인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 교수는 “투자자로선 적은 세액공제를 위해 큰 손해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이번 정책은 임금인상으로 연결되기도 어렵고 기업들로 하여금 이익증가 유인을 감소시키거나 해외투자 확대를 모색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보금에는 현금뿐 아니라 기계설비, 투자 등이 포함돼 있어 유보금으로 투자하라는 주장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시 투자하라는 모순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최승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이미 법인세를 부담하고 남은 금액에 다시 과세를 한다면 동일한 과세대상에 대해서 이중으로 과세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