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라인부터 60m를 전력질주했다. 상대 수비수 3명이 따라붙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골키퍼는 유명무실했다. 그의 질주는 마치 폭주 기관차와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메시’라 불렀다. 약 2주간 한국에 축구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바로 이승우(16ㆍ바르셀로나 후베닐A)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16(16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드러난 이승우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한국에 없던 축구였다. 축구팬들의 가슴이 설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란한 드리블과 상식적이지 않은 패스, 거기에 자유분방한 언행이 더해지면서 16세 축구 천재 이승우에 대한 관심은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이승우는 AFC U-16 챔피언십에서 MVP와 득점왕(5골)에 올랐다. 특히 시리아와의 4강전에서는 무려 5개의 공격 포인트(1골 4도움)를 기록하며 가공할 공격력을 입증했다. 비록 북한과의 결승전에서는 1-2로 역전패했지만 이승우가 2주 동안 남긴 생생한 기록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무슨 까닭일까. 아직 어린 선수다. 성인이 되어서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의 메시’라 불리지만 아직 보완할 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우 신드롬이 쉽게 가시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존 한국 축구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한국은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월드컵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낸 기억의 거의 없다. 특히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유럽파를 대거 기용하고도 1무 2패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 축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승우의 등장은 드라마틱한 타이밍이다.
물론 한국 축구사엔 여러 명의 축구 신동이 거처갔다. 1980년대 김종부를 시작으로 근래에는 고종수ㆍ이천수ㆍ박주영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성인 무대에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지나친 극찬과 기대감이 선수 개개인에게 자만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자만심의 결과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다.
하지만 어디 그들만의 책임일까. 어릴 적부터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운동에만 몰입해야 하는 상하 명령식 훈련 구조는 축구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기 일쑤다. 그러는 동안 축구 신동은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1~2명의 엘리트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풍토도 문제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경기다. 결코 1~2명의 스타플레이어가 승리를 안겨주지 않는다. 제아무리 뛰어한 공격수라도 부실한 허리와 구멍 수비까지 메워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승우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이유다.
북한엔 이번 대회 4골을 넣은 한광성이 있지만 이승우에 비할 선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앞세워 이승우와 장결희 등 한국 대표팀 공격수를 꽁꽁 묶으며 우승컵을 가져갔다. 축구에서의 조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입증한 경험이었다.
이승우의 다음 시험 무대는 내년 10월 칠레에서 열리는 U-17 월드컵이다. 그리고 4년 뒤 2018 러시아월드컵 대표 발탁도 도전할 만하다.
AFC U-16 챔피언십을 통해 한국 축구는 또 다시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제 2ㆍ3의 이승우 발굴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이승우 등 일부 선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는 기대감은 결국 신드롬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승우 본인에게도 그다지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평범하지만 열정을 가진 선수, 늘 꾸준한 선수, 주니어 시절보다 성인 무대에서 돋보이는 선수,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에게도 관심을 갖는 건 어떨까. 겉으론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구성원이 반드시 있다. 그런 선수를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박수를 보내는 건 우리의 작은 노력에서 시작된다.
1~2명의 스타 선수에 의존하지 않아도 세계 무대에서 얼마든지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는 게 축구의 매력이다.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축구, 그 시작은 어린 축구 신동이 아니다. 숨은 선수를 찾아내는 축구팬들의 작은 노력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