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모습에 국민들은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권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과 같이 정치가 대한민국을 헛돌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을 떠드니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혁신보다는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혁신이란 ‘존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혁신은 고사하고 정치 자체가 실종된 상태이기에, 도대체 뭘 혁신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양당 모두 혁신위를 꾸리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그 인적 구성을 두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먼저 새누리당의 경우를 보자. 새누리당은 혁신위원회 구성이 비박(비박근혜계) 일색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물론 자신이 비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부 의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친박(친박근혜계)이 소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지금 새누리당 친박들이 혁신위 구성을 두고 반발하는 건, 경우에 따라서는 보수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친박들이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발은 혁신위 구성이 완성되지도 않은 새정치연합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당 대표 격인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정치혁신위원장으로 원혜영 의원을 임명했는데,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친노(친노무현계)의 전면 등장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문희상 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고 있지만, 문 위원장의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그렇게 펄쩍 뛸 일은 아니다. 문 위원장은 앞서 비대위 구성을 놓고 계파 수장들로 구성됐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펄쩍 뛰며 결코 그런 구성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비대위 구성에서 소외된 중도 온건파들은 이런 문 위원장의 해명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들 비대위가 계파 수장 모임이라는 느낌을 갖는 건 정치판을 조금이라도 봐 온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문희상 위원장은 모바일 투표 문제로 겪지 않아도 될 내홍을 ‘야기’시킨 측면도 있다. 모바일 투표는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문제가 돼 왔던 사안이다. 이른바 선거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이라는 4대 원칙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동원을 용이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런 모바일 투표를 찬성하는 측은 바로 친노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뜩이나 친노계로 분류됐던 문희상 위원장이 모바일 투표 얘기를 꺼내니, 비노들 입장에선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혁신위원장에 역시 범친노로 분류되는 원혜영 의원이 임명되니 비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혁신위원장 임명과 모바일 투표에 대한 언급이 문희상 위원장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비대위원장이 의심받게 되면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혁신은 고사하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새정치연합의 비대위는 말이 좋아 ‘비상대책위원회’이지, 실상은 ‘생존추진위원회’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특별법 협상과정에서 정당으로 보기 어려운 여러 모습을 노출, 지지율 측면이나 역할 혹은 존재감 측면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있어 당장 생존이 문제인 상황이다. 바꿔 보자면,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이 지금 추진해야 할 것은 ‘혁신’이 아니라 ‘생존’이고, 생존을 위해서는 중도 온건파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대위의 다수를 점하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는 새정치연합 내의 친노계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문희상 위원장이 더 큰 정치적 욕심이 없다면 ‘무난히’ 지금의 상황을 넘어가려 하지 말고 국민적 정서를 헤아려 국민적 의사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계파와는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정당의 생존과 혁신은 타협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