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단통법이 시행된 후 소비자들이 격분하고 있는 것은 단말기 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단말기 구입자에게 지급되던 보조금이 줄어서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부담이 늘었다.
이것은 예견된 사태였다. 필자가 컨슈머워치 운영위원으로서 여러 달에 걸쳐 이법에 반대했던 이유도 이 법으로 인해 값이 오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효과가 분명히 나타난 이상 그리고 값이 오른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상 이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 법을 지지하고 찬성했던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이다. 단말기 가격을 올리겠다는 것이 이 법의 본래 취지였고 그들은 그런 법에 찬성한 것이었다. 그들이 만들고 지지한 법은 소비자들의 단말기 가격 부담을 높여서 단말기 교체를 어렵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또 통신사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보조금 경쟁을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단통법은 취지 자체가 단말기 가격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그랬던 국회의원들이 이제 와서 미래부 장관을 불러 가격이 올랐다며 호통을 친다. 그 모습을 보자니 한심하고 화가 치민다. 미래부 장관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단말기 값 깎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놓은 장본인이 통신사, 제조사 사장들을 불러다 놓고는 왜 값을 안 내리냐며 호통을 쳤다. 도대체 이들은 단통법이 뭔지도 모른 채 입안하고 찬성표를 던졌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 알면서도 표를 잃을까봐 비겁하게 찬성을 하지 않은 척하는 것인가. 무지이든 비겁이든 어떤 경우에도 국회의원과 공무원의 자격이 없다. 그리고 단말기 가격을 다시 낮추고 싶다면 당장 단통법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라.
분리공시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들도 많다. 분리공시란 SKT 등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과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사가 지급하는 장려금을 분리해서 공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분리공시를 해야 하는가? 결국 공시의 목적은 보조금이나 장려금을 줄이게 하려는 것인데 누가 어떤 보조금을 주는지 개별적으로 밝혀야 한다면 보조금 주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즉 분리공시는 보조금을 더욱 줄여서 소비자의 최종 부담을 늘릴 뿐이다. 분리공시는 원가공개를 강요함으로써 기업을 괴롭히는 수단은 되지만 소비자 부담을 낮추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단통법 사태의 해법은 문제의 근원인 단통법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은 단말기 완전 자급제라는 더 문제가 많은 대안을 들고 나왔다. 단말기는 이마트 하이마트 같은 단말기 가게에서 구입하고, 이동통신서비스는 따로 가입하게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지급되던 보조금의 상당 부분이 통신사로부터 나왔다. 서로 타사의 고객을 끌어오거나 더 비싼 요금제를 권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완전자급제가 되어서 단말기만 따로 사야 하는 상황이라면 통신사가 보조금을 지불할 리 없다.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단말기에 장려금을 더 늘릴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단말기 시장은 이미 글로벌화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깎아주면 다른 나라에서도 할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할인을 꺼려할 것이다.
완전자급제가 되면 통신사가 통신요금 경쟁에 나설 것이라며 이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장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통신사들이 단말기에 보조금을 줘온 것은 다른 통신사의 고객을 끌어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단말기 자급제가 되면 고객 1명을 확보하기 위해 수천만명의 통신요금 전체를 조정해야 한다. 통신사들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완전자급제가 되면 통신요금은 내리지 않은 채 단말기 가격만 더욱 오를 것이다.
분리공시제든, 완전자급제든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격이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이여, 진정 소비자의 부담을 걱정한다면 단통법을 폐지해서 통신사들이 서로 경쟁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