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윤동주, 이상…. 시를 통해 불안한 시대 속 존재감을 드러낸 문인들의 이야기가 무대로 옮겨졌다. 최근 시인의 일대기, 작품을 모티브로 삼은 연극과 뮤지컬이 공연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풀’, ‘폭포’ 등을 통해 쉬운 언어로 다가와 시대를 꿰뚫은 김수영, 일제 치하의 양심적 부끄러움을 순수하게 노래한 ‘별 헤는 밤’, ‘서시’ 등의 윤동주,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 등을 다룬 작품이 그 대표적 예다.
연극과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신뢰를 쌓아온 배우 강신일은 4일부터 김수영 시인의 예술세계를 소재로 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도 분개하는가’ 무대에 오른다. 김수영의 1965년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 구절에서 작품 제목을 따왔다.
또한 서울예술단은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를 통해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지방 공연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난 이 작품은 자유로웠던 윤동주의 연희 전문학교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지식인으로서 암울한 시대 현실과 맞닿아있는 고뇌마저 시각적으로 펼쳐낸다. ‘오감도’, ‘날개’ 등 시의 스펙트럼을 넓힌 선구자 이상의 수필 ‘권태’를 소재로 한 연극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도 지난 2일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도 분개하는가’의 김재엽 연출은 “무엇이 옳은 삶인지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온 시인들은 동시대를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장 정직하게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만큼 시인을 호출하는 공연이 줄잇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우울함을 반증하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증거”라고 밝혔다.
이어 김 연출은 소재 각색에 신중해야할 점에 대해 “단순한 전기적 일대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시인이 살아가는 과정과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 사이에 느껴지는 치열함과 긴장관계에서 시인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관객들에게도 시인의 작품에 관해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통한 새로운 형상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