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살림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불필요한 예산 집행을 줄인다. 아울러 사업과 조직을 들여다 본 후, 효율성이 떨어질 정도로 비대해진 부분엔 ‘쇄신 카드’를 빼낸다. 여지없이 인력 구조조정의 한파가 뒤따른다. 현대중공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최근 임원 262명의 일괄사직서를 받은 후 나흘 만에 31%에 달하는 81명을 내보냈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임원 감축이 없었던 곳이다.
기업들의 인력 구조조정은 ‘성과주의’ 인사 원칙이 정착되면서 더욱 살벌해졌다. 성과주의는 ‘신상’과 ‘필벌’이 바탕이지만 ‘성과있는 곳에 보상’이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더 부각돼 왔다. 반면 요즘같이 실적이 안 좋을 때 성과주의는 냉혹한 구조조정의 서슬이 퍼런 칼날이 된다. 이제 곧 시작될 인사철은 성과를 낸 이들에겐 부푼 기대를 안겨주지만 다른 한쪽엔 냉혹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이 중 161명이 새롭게 ‘별’을 달았다.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36조700억)낸 삼성전자에 성과주의 인사 원칙은 더욱 빛이 났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9조8000억원에 그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3년여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매출, 영업이익은 각각 47조4500억원, 4조60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8.5%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2011년 3분기 처음 10%를 넘어선 이후 14~17%대의 고공행진을 계속해왔다. 성과주의 인사원칙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대목이다.
재계는 수많은 기업의 영업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만큼 이번 연말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를 예상하고 있다. 올해 우리 기업들은 종잡을 수 없는 변수에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글로벌 경기침체, 변동성이 큰 환율 등 악재가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탓은 아니지만, 부진에 대한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은 정규직이 아닌 사실 계약직이나 다름 없다. CEO의 경우 통상 3년의 법정 임기를 보장하지만, 끝까지 채우는 사람은 드물다. CEO나 임원이나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만큼 1년 만에 쓸쓸히 퇴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문책성 인사가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CEO, 임원 평가를 단순히 매출, 영업이익 등 숫자를 기준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속 가능성을 중요한 경영 목표로 여기는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대비보다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된다면, 이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