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시민혁명을 환영한다 [최성근의 인사이트]

입력 2014-11-1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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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팬심이 프로야구를 움직이고 있다. 과거엔 절대적 권력을 지닌 프런트의 결정에 수동적으로 따라갔다면, 이젠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구단의 운영 방침까지 바꾸고 있다. 최근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감독 선임을 두고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야구팬이 만든 감독이 탄생했다. 한화는 당초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내부 인사를 염두에 뒀었다. 그러나 한화 팬들의 밑바닥 민심은 ‘김성근’이었다. 청원 투표, 영입 촉구 동영상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고 1인 시위까지 벌였다. 결국 팬들의 마음을 읽은 김승연 회장이 직접 나서 ‘야신’을 잡았다. 감독 선임 이후 한화는 국민 구단이 됐다. 요즘 ‘김성근 이글스’의 곡소리 나는 훈련 소식은 한 해 가장 큰 이벤트인 한국시리즈 소식 만큼이나 팬들에게 화제다.

구단이 선택한 감독은 팬들에 의해 낙마했다. 시즌 후반 KIA의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선동열 감독의 퇴진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KIA는 선 감독을 다시 선택했고 팬심은 들끓었다. 온라인에선 재계약 철회 릴레이가, 오프라인에선 선 감독 퇴진 1인 시위로 구단과 감독을 압박했다. 선 감독은 구단 홈페이지에 반성문을 올리며 등 돌린 팬들에게 읍소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결국 재계약 6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팬들은 구단의 집안 싸움에도 힘을 발휘했다. 롯데는 시즌 종료 후 신임 감독 선정을 놓고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프런트 측이 공필성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임명하려 하자 선수단이 “파벌인사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여기에 구단주가 선수들을 CCTV로 사찰했다는 의혹이 터지자 팬들은 구단 프런트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서울, 부산 등에서 1인 시위, 항의 집회에 삭발식까지 열며 프런트의 퇴진을 요구했다. 결국 최하진 사장과 배재문 단장은 팬들의 성난 목소리에 밀려 짐을 쌌다.

과거에도 프로야구를 향한 팬들의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팬심이 감독 선임, 구단 사장 및 단장의 사퇴까지 영향을 준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구단으로선 팀의 발전을 위해 여론에 반하거나 전후사정을 밝힐 수 없는 정책을 추진해야할 때도 있다. 팬심이 너무 강해지다 보면 소신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려워지고, 구단 운영진들이 타당한 비판 외에 감정적인 비난에 좌지우지 될 수도 있다. 사실 팬들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해진 팬심은 프로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들이 침묵을 지킬 땐 정체됐던 사회가 의견 표출이 활발해지면서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다. 프로 스포츠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산다. 팬들의 반응은 프로야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에 거친 반응이라도 소중하다. 여과되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들을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다면 2014년 가을에 보여준 뜨거운 팬심은 프로야구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킬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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