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경제국장 겸 정치경제부장
일본의 창조성은 최근에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바로 지난 9일 가수 이승철의 입국을 가로막은 것이다. 소속사는 “이승철이 9일 오전 지인의 초대로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출입국사무소에 억류됐다. 결국, 그날 귀국했다. 지난 8월 독도에서 ‘통일송’을 발표하고 이와 관련해 언론 보도가 잇따른 데 대한 표적성 입국 거부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연예인 중 일본 입국이 거부된 사례는 하나둘이 아니다.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국민 가수 정광태는 1996년 방송 촬영을 위해 제작진과 함께 일본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지만, 제작진만 비자가 나오고 정광태는 입국을 거부당했다.
독도 문제로 한·일 양국이 힘 대 힘으로 맞붙었던 2011년엔 그룹 비스트와 씨엔블루 등 수많은 인기 가수들이 일본 공항에서 8시간가량 억류됐다가 입국을 거부당했다. 당시 일본 측은 표면적으로는 비자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상은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독도 행이 좌절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2012년 김좌진 장군의 후손인 송일국도 수모를 당했다. ‘독도 수영횡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본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것이다.
입국을 거부당한 연예인들은 일본의 광신적 테러집단 옴진리교도처럼 지하철 어느 구석에 독극물을 ‘훅’ 살포할 사람들은 절대 아니고 중요한 전과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들의 입국을 거부했다. 이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현저한 사람 이외엔 입국에 제한받지 않도록 한 한일비자면제협정 위반이다. 창조적이긴 하지만 불법이란 얘기다.
지금까지 일본 고위인사들과 소위 지식인들은 틈만 나면 무한한 창조성을 발휘한 발언과 행동으로 우리를 감탄하게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그는 지난해 9월 방미 중 허드슨연구소에서 “나를 군국주의자로 불러도 좋다”고 우리를 한껏 도발했다.
어디 아베 총리뿐이겠는가.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월간지 ‘문예춘추’ 10월호 기고문에서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일본 책임을 인정한 기사를 취소한 것과 관련, “고노 담화를 주장한 자민당 정치인들과 아사히신문 측을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켜 TV로 생중계해야 한다”며 “누가 위안부라는 명칭을 붙였는지 알 순 없지만 참 상냥한 이름이다. 위안은 고통을 위로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일본이 한 대로 한다면 한국은 망언의 장본인인 아베 총리, 시오노 등을 입국금지라도 시켜야 할 일이다. 혐한시위를 주도하는, 온 지구 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무리도 여기 포함해 마땅하다.
그런데 한국이 한 일이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갈라만찬에서 아베 총리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양국 국장급 협의가 잘 진전이 되도록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며칠 뒤엔 한중일 정상회담도 제안했다. 팽팽해진 긴장 관계를 풀겠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는 정부가 2016년까지 독도 접안시설 인근 몽돌해안에 연면적 480㎡, 3층 규모의 독도입도지원센터를 건립하려다가 “몇 가지 문제를 검토해서 추진하도록 하겠다”는 뜨뜻미지근한 입장으로 변한 데서 감지됐다.
정부가 교착된 한·일 관계를 풀려고 노력하는 것은 한미일 동맹이나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생각할 때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이건 일본 집권층과 주류 지식인이 정상인일 때이다. 그런데 현 지도층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지식인은 그 태생과 정치 기반으로 볼 때 절대 이런 기대를 하기 불가능한 족속이다. 북한 김정은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못 믿을 ‘애국주의 환자’들과 그냥 대충 화해한다? 이건 허튼짓이다. 확고한 변화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믿음이라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기 전엔 절대 같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