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은 현대가(家) 2세대 대부분이 아버지 고(故) 정주영 창업주가 세운 기업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과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는 서울 원효로에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세워 ‘갤로퍼 신화’를 일궈냈다. 해외에서 ‘싸구려 현다이’로 평가받던 현대차를 세계 5위 업체로 성장시킨 것도 바로 정 회장이다.
이처럼 미래에 주목하는 정 회장의 올해 선택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부지였다. 정 회장은 한전부지 인수를 위해 직접 10조5500억원을 인수금액으로 써냈다. 실무진에서는 5조원 전후를 적당한 가격으로 봤지만 정 회장은 통 크게 베팅했다.
정 회장은 인수 뒤 “사기업이나 외국기업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사는 것이어서 금액을 결정하는데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며 “한전부지 인수는 100년을 내다보고 결정한 일이고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물론 시장은 정 회장의 열정을 바로 알아주지는 않았다. 한전부지 인수 직후 ‘무리한 가격에 인수했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인수 참여 주체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속절없이 떨어졌다. 재계 일부에서는 ‘사옥을 중시 여긴 기업 중 잘 된 기업은 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정 회장이 한전부지를 인수한 후 3개월이 지난 현재는 긍정 여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한전부지에 만들어질 자동차 테마파크, 컨벤션센터를 통한 현대차 브랜드 상승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무형의 가치라는 것.
정 회장의 한전부지 인수가 현대차에게, 또 국내 자동차산업에 어떤 파급을 미칠 지는 아직 가늠키 어렵다. 준공까지는 최소 5년의 시간이 남아 예단도 쉽지 않다. 시장을 뒤흔든 그의 결정은 미생(未生)일까 완생(完生)일까. 현대차 삼성동 시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