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천곤충박물관 김태완(金泰完·57) 관장이 말한다. “끝이 없다는 것?”
손바닥만한 장수하늘소가 기자를 압도한다.
두 팔을 위엄 있게 치켜세우고 표독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는 사마귀는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한다. 영등포에 위치한 만천곤충박물관이자 곤충숍에는 이런 곤충이 ‘몇’만 종(種), ‘몇’ 백 만마리나 있다. 이곳의 관장인 김태완 씨는 곤충의 수를 모두 헤아릴 수 없어 ‘몇’이라고 표현한다.
왜 이렇게 많이 있냐고? 곤충의 무궁무진함. 끝을 알 수 없는 종류들 때문이다. 김 관장은 거기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매년 수십억 원을 끌어 모았던 인쇄소 사장 김씨가 소년 시절 꿈꾸었던 곤충의 세계로 뛰어든 이유. 궁금해졌다.
◇ 기계화와 물장군
30년 전 인쇄소는 활자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찬 이들로 문전성시였다. 인쇄소 사장이었던 김씨의 주가도 덩달아 하늘을 찔렀다. 짭짤한 수입에 연신 웃음도 끊이질 않았다. 인쇄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작업을 기계가 한다뿐이지 수입에 많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인쇄소가 사람보다 기계의 손을 많이 탈 무렵. 김 씨의 손도 꽤 한가로워졌다.
“인쇄소가 한가해지니 취미생활이 늘어나더라고요. 골프도 치러 다니고, 낚시도 아들과 함께 하러 다녔었죠. 그런데 어느 날은 낚시를 하는 데….” 김씨가 곤충의 세계에 정식적으로 발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를 회상했다. 멍하니 낚싯대만 쳐다보며 세월아 네월아를 외치던 그때! 잔잔한 물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 있었으니 물장군이었다. 김씨의 얼굴에 천친난만한 미소가 퍼졌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은 어린 시절 꼬마 곤충채집소년 김태완이었던 것이다. 김 씨는 그 순간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고 말했다. ‘아! 내가 이렇게 곤충을 좋아했었지?’ 이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김씨는 낚싯대를 곤충채집 망으로 바꿔버렸다. 바로 뒷산으로 올라가 보이 는 곤충을 모조리 잡았다. 그게 25년 전 이 세계로의 시작이었다.
◇ 아내는 힘들지만, 나는 안 힘든 직업
“제 아내는 곤충을 정리하고 상품화 시키는 것에는 국내 최고였어요. 하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곤충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백기를 들고 나가버렸어요.”
만천곤충박물관은 살짝 어수선하긴 했다. 아마 너무 많은 곤충들 때문에 방치 아닌 방치를 해놓아서 그럴 터. 그래서 김 씨는 아내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정리하는 일은 아내만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는 달리 김씨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이미 곤충의 마력에 중독 돼 버린 것 이다.
“이 일을 하면서 직원이 말썽을 부린 적도 있고, 사기도 수없이 당했지만 이 일을 놓을 수 없었어요. 곤충의 매력 때문이에요. 저도 이제 마무리 좀 보고 싶거든요? 근데 이건 끝이 없어요. 새로움, 새로움, 새로움. 계속 새로운 것이 들어와요. 수십년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지루할 만도 한데, 이건 지루할 틈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이 힘든지 모르겠어요.”
◇ 인생을 바꾼 아들의 한마디
봄, 여름, 가을이 되면 곤충을 잡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겨울은 그저 표본 작업. 그래서 당시의 겨울은 김씨에게 따분한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던 그의 아들이 무심코 한마디를 던진다. 김태완의 인생이 바뀐 한마디였다.
“아빠 필리핀에는 겨울이 없잖아요.”
당시를 생각하니 어이없고, 웃겼는지 김씨는 ‘빵’ 터졌다. “아들 말을 듣고 그 해에 필리핀을 갔는데 이건 완전 신세계인 거예요. 예쁘고 신기한 곤충도 많고, 보지 못한 곤충들도 많고요. 그 이후에 매년 2번씩 곤충 잡으러 가고 있어요. 이제는 남미, 아프리카까지 안 가는 곳이 없죠.”
김씨는 이제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국내에서는 이미 국내·해외 곤충 하면 ‘만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미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빅 바이어’로 소문이 나 있어, 세계의 곤충 채집가들이 새로운 것이 있으면 먼저 김씨에게 건낼 정도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곤충을 보유한 그는 더 큰 꿈을 품고 있다.
“세계에서 곤충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곤충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곤충을 적극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지만요.”
◇ 장수말벌에 쏘이면?
“해외로 채집을 하러 가면 위험을 감수해야 될 부분이 정말 많아요. 운전기사와 가이드만 데리고 채집을 하기 때문이죠. 거머리도 엄청 많은데 어떨 땐 피 한 바가지 빨리고 올 때도 있어요. 못 믿으시겠죠?”
아직도 그의 아내는 이 일에서 손을 놓기를 바란다. 김씨와 함께 10년 간 일을 해봤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곤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다. 거머리뿐 만 아니라 독충, 뱀, 말라리아 등을 채집할 때 곳곳에 도사리 고 있는 위험 요소들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보기 만 해도 그 위압감에 손사래를 친다는 장수말벌 에도 수차례 쏘인 김씨를 본 아내는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 요소에 대해 말하는 김씨의 말도 가관이다. 사냥 본능을 숨길 수 없는 영락없는 50대 파브르였다.
“장수말벌이요? 뭐 수도 없이 쏘였죠. 쏘이면 어떠냐고요? ‘따갑네?’ 이 정도예요. 별 느낌 없어요. 곤충 잡기 바쁜데 아플 시간이 어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