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스크램블 톡] 닛케이, FT ‘촌철살인’ 전통 이어갈 수 있을까

입력 2015-07-24 15:36수정 2015-07-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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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신문의 FT 인수 소식을 담은 2015년 7월24일자 조간. 사진=블룸버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파이낸셜타임스(FT)를 인수하다니?!”

일본 경제 일간지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 유력지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세계 미디어 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청와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까지 나서 “글로벌화의 파도가 일본 미디어 업계에도 밀려오고 있다”며 한껏 고무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일본 밖에선 우려의 소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지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이라고 한다면 FT는 영국을 대표해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경제 신문입니다. 간단 명료하고 다양한 기사, 날카로운 분석 때문에 보수적인 WSJ보다 FT를 읽는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통신사 블룸버그를 만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도 자신이 읽는 몇 안되는 신문 중 하나로 FT를 꼽기도 했지요.

이런 FT를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인수한다고 합니다. 우선 걱정되는 건 문화의 차이입니다.

WSJ는 영국 금융가인 런던시티에서 성장한 FT가 조심성 많은 일본 언론사와 잘 융합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네요. 일본 미디어는 기업과 정부 등 취재 대상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랄한 논평으로 정평이 나 있는 FT가 이 문제로 닛케이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그동안 FT의 편집권 독립성을 지켜줬던 모회사 피어슨과 달리, 니혼게이자이신문이 FT의 경영 일체와 편집권에까지 관여하게 될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존 리딩 FT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인수에서 가장 우려한 부분이 편집권의 독립성 여부였다고 합니다. “편집 방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엇보다 오랫동안 신중하게 고려한 점이었다”는 그의 말은 이 부분이 얼마나 큰 고민거리였는 지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일각에선 당초 유력 인수 대상자로 거론된 독일 악셀스프링거나 블룸버그 중 하나가 FT를 인수할 줄 알았는데 어쩌다 일본 경제지가 인수하게 됐느냐는 불평도 나옵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이번 인수가 개운하지 만은 않을 겁니다. FT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손에 넣음으로써 단숨에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세계 최대의 언론 매체로 부상하고, 영어권 독자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경제 합리성 만을 놓고 본다면 실제로 남는 장사일까요? 과연 FT가 35년치 영업이익(2014년 기준), 실질 가치의 3배에 이르는 금액을 지불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FT의 경우 인수금액은 2013년에 아마존닷컴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할 당시 금액의 5배, 영업이익에 대한 인수금액 배율은 2배에 이릅니다. 닛케이가 FT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FT가 글로벌 미디어 업계에서 나름 디지털 선봉의 역할을 담당하며 좋은 본보기가 됐음은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날이 마냥 창창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FT 가입자 72만명 중 70%가 온라인 유료 독자라고 합니다. 작년 매출 5억1800만 달러, 영업이익 3700만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피어슨은 어떤 방법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려왔는지를 투명하게 밝히진 않았습니다. 과도기를 맞아 미디어 산업 전반이 독자와 광고주 이탈로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피어슨은 정통 언론사도 아니고 이윤을 남겨 먹고 사는 ‘기업’입니다. FT의 편집권이 보장을 받든 말든 남는 장사를 했으면 되는 거죠.

그러나 닛케이는 상황이 다릅니다. 139년 전통의 ‘언론사’입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사운을 건 도박을 한 겁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전세계 금융인과 하루를 함께 여는 FT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해선 안될 겁니다. 본전 생각에 비용 절감 한답시고 유명 칼럼니스트나 저명 기자들을 구조 조정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이따금 띄엄띄엄 정독하는 칼럼니스트들의 촌철살인, 깔끔하고 명료한 기사들,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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