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 선수의 골이 들어가네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SK 핸드볼 경기장에 임오경(44ㆍ서울시청) 감독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은 임오경 감독에게 특별한 하루였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핸드볼 학교 수업과 개교식을 시작으로 2015 서울컵 남자부와 여자부의 경기가 이어졌다. 그는 올림픽 제패 기념 2015 서울컵 국제 핸드볼대회에 참가한 여자 핸드볼 대표팀과 프랑스 이시 파리(Issy Paris)의 경기를 생생하게 해설했다. 경기는 한국 여자대표팀의 38-21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경기 후 마이크를 내려놓은 임오경 감독은 “이어폰이 잘못돼 정신없었다”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남녀 대표팀이 첫 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고,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였기 때문이다.
핸드볼 학교 개교식에 이어 서울컵 경기가 펼쳐진 SK 핸드볼 경기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골이 터질 때마다 울려 퍼지는 음악과 치어리더의 응원,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요즘 임 감독은 핸드볼 학교를 통해 핸드볼 저변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1일 첫 수업을 시작한 핸드볼 학교는 국가대표 출신 강사가 핸드볼 꿈나무와 동호인을 직접 지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치부, 초등부, 성인부 참가자들이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핸드볼의 매력에 빠져든다. 특히 아이들은 공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핸드볼에 쉽게 흥미를 느꼈다.
“아이들이 처음 부모님을 따라 왔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토요일만 되면 핸드볼 학교에 가자며 부모를 조른다고 해요”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임 감독은 “핸드볼 학교 수업시간에 늦은 아이들이 ‘아빠가 늦잠 자서 늦었어요. 핸드볼을 조금밖에 못 해서 속상해요’라며 투정부리더라고요”라며 아이들의 핸드볼에 대한 달라진 관심도를 자랑했다.
핸드볼 학교의 소문은 금세 퍼졌다. “처음에는 60여 명이 신청했는데 170명까지 늘었어요. 단순히 핸드볼이 아닌 놀이를 통해 협동심을 발휘하고 즐겁게 프로그램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핸드볼학교에 참가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데려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핸드볼 학교는 12월까지 진행되지만, 내년 1월에 신입생을 받아 강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핸드볼 학교가 선수 폭의 증가와 관중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핸드볼 활성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핸드볼 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흥미를 느낀다면 엘리트 선수로 전향해 올림픽 메달을 노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가 ‘핸드볼을 했다’는 자부심이 핸드볼 저변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생들이 성장해 선수와 관객으로서 핸드볼 경기장을 가득 메우지 않겠어요?”라는 게 임 감독의 바람이다.
핸드볼 학교는 강사에게도 비전을 제시했다. 조은희(43) 대한핸드볼협회 저변확대이사를 비롯해 차재경(45), 허영숙(40) 등 ‘우생순’의 주역이 모두 뭉쳤다. 임 감독은 이들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와 후배와 아이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라”라고 설득하며 강사로 불러들였다. 강사로 나선 메달리스트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숨어 있던 핸드볼에 대한 열정과 보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임 감독은 “메달리스트 강사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고 했어요”라며 즐거워했다.
임 감독의 올해 목표는 확고했다. 지금까지는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을 도와달라”라고 말하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직접 나선다. 핸드볼 학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홍보 전단을 직접 나눠줬다.
“올해는 ‘핸드볼이 인기종목으로 성장했다’고 직접 멘트를 날릴 거에요”라고 말하는 임오경 감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임오경은 1971년 12월 28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핸드볼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재 핸드볼 해설위원이자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이다. 핸드볼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