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교과서 국정화의 ‘칼’

입력 2015-10-2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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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지난 주말 오랜만에 TV토론을 보았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보았다. 짐작하겠지만 주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었다.

문제가 깊어 보였다. 첫째, 기본적인 역사 인식부터 차이가 컸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관한 문제,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과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에 관한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서 견해차가 너무 컸다.

진보 측 토론자들은 대한민국이 1919년 상하이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세워졌다고 했다. 1948년 제1공화국 성립과 함께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체사상 또한 그들이 말하는 바를 소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물론 소위 ‘좌편향 7종’으로 불리는 교과서들은 이들의 이러한 견해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반면 보수 측 인사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적시하며 상대를 공격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들 역시 자신들의 역사 인식을 바꾸거나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둘째, 역사교육의 목적에도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보수 측 토론자들은 역사교육의 체제 유지 기능과 시민교육 기능을 강조했다. 좌편향의 교과서가 좌파를 양산해 내고,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니 막아야 한다고 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고 했다.

반면, 진보 측 토론자들은 역사교육의 목적을 개인의 비판적 역량을 키우는 쪽에 두었다. 논쟁이 되는 사안의 사실적 측면을 강조하는 한편, 오랜 권위주의 체제와 보수이념 아래 형성된 ‘잘못된’ 역사 해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다.

너무나 다른 입장들이었다. 쉽게 어느 한쪽으로 정리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건국을 상하이임시정부로 보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해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근본적 이념이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냐를 묻는 문제로까지 연결되게 되어 있다. 상하이임시정부가 지향하는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느 쪽도 쉽게 물러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교과서를 국정화한다? 그래서 역사인식과 해석을 하나로 만든다? 글쎄, 결국 어느 한쪽을 죽이겠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가능할까? 대통령과 정부가 밀어붙이면 몇 해야 가겠지. 하지만 그 뒤는 어떻게 될까?

정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금의 검인증 체제는 또 다른 획일화를 초래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진보적 성향이 강한 경향이 있는데, 바로 이들이 교과서의 집필과 검증, 그리고 채택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진보성향의 단체들이 보수성향의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시위를 하는 등 학교와 교사들을 압박해 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8종의 한국사 교과서 중에 ‘우편향’의 교학사 것을 뺀 나머지 7종이 ‘좌편향’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교학사 것의 채택률은 0%, 나머지 7종이 100%다. 중도라 분류되기도 하는 지학사와 리베르스쿨 교과서 10% 정도를 빼더라도 90%가 된다. 정부나 보수적 견해의 인사들로서는 이 체제로는 ‘좌편향’ 일변도의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 지난 역사를 봐라.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획일적인 역사관의 강요가 지금과 같은 소위 ‘좌편향’ 일변도를 불렀다면, 지금의 이 상황이 다시 국정화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반동이 반동을 부르는 일을 계속해야 하나.

답은 분명하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역사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규정한 후,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어느 한쪽으로의 획일적 역사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당연히 집필 검증 채택 전 과정의 참여자들도 더욱 다양화되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를 놓고 긴 논쟁을 할 수 있다. 또 집필ㆍ검증ㆍ채택 과정의 개혁을 두고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과 대립할 수 있다. 채택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압박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회단체 등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쉽게 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칼이라 하여 함부로 들어 올리지 마라. 칼은 다시 칼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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