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복귀·외국인 CEO·전문경영인 채용 통해 기업 회생에 나서
한때 벼랑 끝에 내몰렸던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되찾게 된 데에는 리더십도 크게 작용했다.
폐쇄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일본 기업들은 위기의 회사를 살리고자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와 전문경영인 등용도 마다하지 않는 등 전통적인 기업 문화까지 바꿨다. 이들은 ‘선택과 집중’을 주축으로 성역 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지진 등 전대미문의 파고를 뛰어넘었다.
일본 기업은 서구와 달리 기업문화 계승 등을 이유로 내부 인재를 CEO로 기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하고 전문 경영인을 장시간에 걸쳐 육성할 여유가 없어 외국인 CEO나 전문 경영인을 채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소니는 전문 경영인을 기용해 성공한 사례다. 소니는 1997년 미디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영국 태생의 하워드 스트링거를 CEO로 영입했다. 그는 카리스마는 있지만 일본어나 기술에는 문외한이었다. 금융과 영화, 음악 등의 사업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역량이 분산, 1950년대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으로 명성을 쌓은 소니의 경쟁력에도 금이 갔다. 그러다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지진으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소니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스트링거는 2013년 회사를 떠났고 그 자리에 히라이 가즈오가 앉았다. 그는 취임 이후 ‘소니는 하나’라는 구호 아래 야심차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모바일 게임 카메라에 전자 사업부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한편 PC 사업부를 매각했다. 또한 TV 사업부를 떼어내고 스마트폰 사업부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덕분에 소니는 내년 3월 끝나는 2015 회계연도에 흑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소니는 최근 7년 중 6년간 적자를 냈다.
혼다자동차는 오래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 사장은 1973년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며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다. 경영자보다는 기술자에 가까웠던 창업주 소이치로 사장이 물러난 혼다는 ‘기술중심’에서 ‘현장중심’의 경영전략 전환을 통해 혁신을 도모했다.
그러다가 혼다는 지난해 일본 다카타 에어백 리콜에 따른 판매 부진, 품질 결함, 기업 이미지 악화 등 각종 악재로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혼다 이사회는 지난 6월 혼다 중국 생산총괄책임자인 하치고 다카히로를 신임 CEO에 임명했다. 하치고 CEO는 판매량 확대보다는 초창기 혼다의 ‘기술중심’ 경영전략을 다시 도입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그의 노력으로 혼다는 지난 상반기 실적 호조는 물론 올해 전체 실적 전망도 상향 조정했다.
올 상반기 10년 만의 최고의 순익을 달성한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은 일본 대기업 중에선 유일하게 ‘파란눈의 CEO’로 장수하고 있다. 닛산은 2001년 레바논계 이민 3세인 카를로스 곤을 CEO로 선임했다. 1999년 6월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회사와 인연을 맺은 곤 CEO는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을 제시하며 파격적인 개혁을 시행했다. 그 결과 2003년 닛산은 사상 최대 순이익을 냈고, 이듬해 곤 CEO는 외국인 경영자로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공공이익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인 ‘남수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금융위기의 여파에서도 살아남은 만큼 이변이 없는 한 일본의 ‘파란 눈의 CEO’ 중에선 최장수로 기록될 전망이다.
최근 세계 자동차 업계 판매 1위를 재탈환한 도요타자동차는 창업주의 경영 일선 복귀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1937년 설립된 도요타는 60여 년간 창업주가 경영을 맡아오다 1995~2008년까지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다 2009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창립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하자 14년 만에 다시 창업주 체제로 전환했다. 제11대 사장에 취임한 창업주 3세 도요다 아키오는 일본 내 생산과 고용을 유지하는 ‘현지현물(문제 발생 시 현장에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 등 전통적인 도요타 정신을 계승했다. 그의 개혁에 힘입어 도요타는 2012년 세계 판매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