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기 회장 ‘신약개발’ 의지에 최근 5년간 5000억 R&D투입… 계약금 연내 수령 땐 매출 1.2조 업계 1위로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업계를 뒤흔드는 대규모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고 있다. 5조원대 기술 수출로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계약 수출 기록을 수립한 한미약품이 또다시 신약 기술을 1조원대에 글로벌 제약사에 수출했다.
◇자고 나면 또 대형 계약=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 중인 옥신토모듈린 기반의 당뇨 및 비만 치료 바이오신약 ‘HM12525A’(LAPSGLP/GCG)를 글로벌 제약회사 얀센에 총액 9억1500만 달러(약 1조원)에 수출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계약금이 1억500만 달러(약 1160억원)에 이르고, 임상 개발, 허가, 상업화 등 단계별 별도로 총액 8억1000만 달러(약 9300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두 자릿수 퍼센트의 판매 로열티도 받는다.
얀센은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M12525A에 대한 개발ㆍ상업화 등의 독점 권리를 한미약품으로부터 확보했다. 이에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 5일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당뇨 치료제 포트폴리오 ‘퀀텀 프로젝트’ 기술을 5조원 규모에 수출했다. 이 수출 계약이 이뤄진 지 나흘 만에 또다시 1조원이 넘는 초대형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한미약품은 이번 계약건 외에도 올해 들어서만 미국의 일라이 릴리, 독일의 베링거잉겔하임과도 각각 6억9000만 달러(약 7800억원), 7억3000만 달러(약 8300억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신약 개발의 성과를 이미 입증한 바 있다. 한미약품이 이번 계약에 앞서 체결한 2건의 기술수출 계약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국내 제약사상 역대 최대 규모였다.
◇국내 최대 제약사 넘본다= 업계에선 미국 공정거래법상의 승인 절차가 완료돼 한미약품이 사노피로부터 4억 유로(약 4958억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연내 받게 될 경우, 유한양행과 녹십자를 넘어 국내 제약사 매출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올해 3분기까지의 누적 매출(연결 기준)은 약 7276억원으로, 4분기 추정 매출액인 2333억원을 더하더라도 9609억원에 그쳐 아쉽게도 매출 1조원에는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번 사노피와의 계약 덕분에 연내 5000억원에 달하는 계약금을 받아 4분기 매출 실적에 반영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업계에선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에 따른 계약금이 4분기 매출로 잡히면 올해 전체 매출은 1조223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임성기 회장의 R&D 뚝심=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업계를 뒤흔들 대형 계약을 따내면서 임성기<사진>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는 임성기 회장의 R&D를 향한 ‘뚝심’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업계 내외의 평가다. 임 회장이 R&D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투입된 누적 R&D 규모만 9000억원대에 이른다. 최근 5년간의 누적 R&D 규모만도 5000억원대다.
한때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연구개발을 독려하고 지원해 준 그의 열정과 의지가 결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1997년 노바티스에 ‘마이크롱메절전’이라는 약물전달기술을 당시 제약산업 최대 규모인 6300만 달러에 수출한 경험이 있다. 이후 임 회장은 “제대로 된 신약만 만들면 글로벌 시장에서 해볼 만하겠다”며 임직원들에게 신약 개발을 지속적으로 독려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36억원에 불과한 한미약품이 R&D 비용을 무려 1354억원 투입한 것을 두고 주위에선 무모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임 회장은 그러나 신약 개발의지를 꺾지 않았다. 임 회장의 남다른 승부욕도 신약 개발의 일등공신이다. 평소 자신의 바둑 실력에 자부심을 느끼던 임 회장은 한 번은 지역 바둑대회에 나가서 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임 회장은 당시 유명한 바둑 기사를 찾아가 개인 지도를 받고 자신을 탈락시켰던 바둑대회에 다시 나가 기어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가도 앞다퉈 목표주가 상향= 한미약품의 초대형 잭팟에 증권가들도 목표주가를 잇달아 올리고 있다. 현대증권 김태희 연구원은 “한미약품의 기술수출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기존 62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지난 3월 일라이 일리와 6억9000만 달러, 베링거인겔하임과 7억3000만 달러 기술 수출에 이어 세 번째 쾌거”라며 “약 5조원의 마일스톤은 국내 최대 규모이며, 최근 무수히 많았던 기술도입 계약 중 손꼽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 역시 이 회사 목표주가를 100만원으로 높였다. 구완성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메가 딜 현황을 보면 이번 계약은 국내 기록을 넘어 전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한 사례에 해당된다”며 “지금까지 국내 제약ㆍ바이오 업체 중 뛰어난 기술력과 협상력으로 기술수출 사례를 꾸준히 만들어 낸 회사는 한미약품이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또 SK증권과 미래에셋증권, 유안타증권은 목표주가를 80만원으로 상향했다. KTB투자증권은 65만원으로 올려 잡았다. 증권가는 이번 계약이 그간 한미약품을 둘러싼 고평가 논란을 일축했다고 보고 있다.
정승규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계약을 통해 내년 한미약품으로 유입될 계약금액의 순이익 기여는 24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며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 정상화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박재철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퀀텀프로젝트의 가치를 기존 1조6000억원에서 5조1000억원으로 상향한다”며 “인슐린 제품에 대해 기존 시장 점유율을 5%로 가정했으나,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 30%에 매출액 기준 51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