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동양인 첫 獨 슈투트가르트 입단… 국립발레단 1대 단장 임성남, 국내에 교습법 전수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발레리나 강수진(48)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내년 7월 22일 독일에서 예정된 은퇴 공연에 앞서 열린 ‘오네긴’ 한국 고별 무대였다. 커튼콜은 무려 10여 분. 2000여명의 관객들은 무대 뒤로 떠나는 강철나비와의 작별에 기립박수를 멈추지 못했다.
1997년 그녀를 수석무용수로 지명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이 무대에 올라왔다. 그는 왼 무릎을 살짝 굽히며 강수진에게 꽃 한송이를 건넸다. 무려 30년. 무대 위에 바친 열정에 대한 존경이었다. 이어 꽃을 든 동료 무용수 30여명이 무대 양옆에서 깜짝 등장한다. 그들은 놀라는 강수진과 포옹하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강수진은 한국 발레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선화예술중학교 1학년 재학시절 모나코 발레학교의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의 눈에 띄어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길에 나선 강수진은 1985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87년 동양인으로는 최초이자 최연소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거머쥔 그녀는 울퉁불퉁한 ‘발 사진’으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강수진과 비교되는 원조 프리마돈나는 광복 이전의 최승희로 대표된다. 일본인 이시이 바쿠의 문하에서 공부한 최승희는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여자 무용수로 현재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승희에 이어 한국 발레의 역사는 임성남을 빼고 거론할 수 없다. 임성남은 1962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 발레를 이끈 사람으로 국립발레단 1대 단장으로 30여년간 활약했다. 그는 1962년 2월, 우리나라의 대표 발레 무용가들로 구성된 국립발레단이 창설되던 해에 단장으로 선임돼 ‘백조의 호수’, ‘지젤’, ‘지귀의 꿈’ 등의 고전 창작 발레 작품을 남겼다. 임성남은 특히, 정확한 교습법이 소개되지 않은 한국 발레계에 자신만의 발레 교습법을 전수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현재 한국 발레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발레단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다. 국립발레단은 1962년 2월 국립중앙극장 전속으로 창설된 국립무용단이 전신이다. 1974년 세계적인 명작 발레인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인형’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고, 1975년 서구발레의 첫 전막 공연으로 ‘지젤’을 발표했다. 이후 계속해서 쇼팽의 ‘공기의 정’, 프로코피에프의 ‘신데렐라’, ‘노틀담의 꼽추’, ‘카르멘’, ‘코펠리아’, ‘해적’ 등의 외국작품을 공연하였으며, ‘지귀의 꿈’, ‘처용’, ‘배비장’, ‘춘향의 사랑’, ‘왕자 호동’ 등을 발표하여 한국 창작 발레를 개척하는 데 노력했다.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순결과 참사랑과 예술의 절대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1984년 7월 창단된 유니버설발레단은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문화예술축전 무용제와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초청작품으로 공연된 ‘심청’을 창작하며 위상을 높였다. 1986년 이래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무대에 올리는 ‘호두까기인형’은 단일 발레 작품으로는 최장의 공연 횟수와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또 1992년 10월 키로프발레단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감독한 ‘백조의 호수’는 1992년 ‘춤의 해’에 가장 빛나는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동양 발레단으로는 최초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공연하여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했다.
이어 1999년 11월 창단 15주년 기념공연으로 한국 발레 사상 최고의 제작비와 최대의 무용수가 출연한 ‘라 바야데어’를 무대에 올렸고, 1999년 헝가리·이탈리아·에스파냐, 2000년 스위스·독일·영국·오스트리아·헝가리·그리스를 잇는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 한국 발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