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이어 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비가 바르게 자리 잡고 있으면 임금이 존경을 받지만 선비가 사라지면 임금은 비천해지고 맙니다.”[夫士存則君尊 士亡則君卑]
위공이 놀라서 “선비의 영향이 그처럼 중합니까?” 하고 물었다. 영자는 초평왕(楚平王)이 초혜 서구 부객이라는 선비들을 죽이려 하자 이들이 진(晉)나라로 도망쳤고, 진나라가 그들을 등용하자 성복지전(城濮之戰)이라는 싸움이 났다고 설명했다, 또 언릉지전(鄢陵之戰)이니 양당지전(兩堂之戰)이니 하는 전투도 다 초에서 도망쳐온 선비를 진이 기용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오자서(伍子胥)는 왕이 아버지와 형을 죽이자 오(吳)로 도망쳤고, 오왕 합려(闔閭)가 그를 기용하자 군사를 몰아 초나라 서울 영(郢)까지 습격했다. 이처럼 초나라는 선비를 잘못 대우하는 바람에 세 번이나 그 백성들이 들판에 해골로 나뒹굴어야 했고, 한 번은 나라를 망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영자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비가 존속하면 나라도 존속하고, 선비가 떠나 버리면 나라도 망하는 법입니다. 오자서가 노했을 때에는 초나라가 망했지만 신포서가 노했을 때에는 초나라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니 어찌 선비가 귀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士存則國存 士亡則國亡 子胥怒而亡之 申包胥怒而存之 士胡可無貴乎] 여기 나온 申包胥(신포서)는 오와 초가 싸울 때 진(秦)나라에 달려가 7일 낮 7일 밤을 울어 구원병을 얻어온 초의 대부(大夫)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