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이어 대기업 330곳 신용위험평가… 채권은행 주도 ‘고강도 구조조정’ 예고
금융권에서 시작된 기업 구조조정으로 산업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지난달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 발표에 이어 이달에는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대출과 보증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한계기업)을 과감하게 솎아내겠다는 금융당국의 주문 아래 채권은행은 일사분란하게 강도를 높여 촘촘하게 여신을 심사하고 있다.
여기에 범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격인 ‘제2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는 지난달 4대 취약업종 구조조정 지침의 큰 틀을 제시했다.
현재 채권단 주도로 조선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앞으로 철강ㆍ석유화학ㆍ건설ㆍ해운 등 4대 취약업종에 대한 채권은행들의 옥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더불어 기업 사이에서 자율적 인수합병(M&A)의 사례도 점점 늘면서 조선ㆍ해운ㆍ건설업 등 한계 산업을 위주로 구조조정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옥석 가리기 본격 시동…기촉법 연장 연내 완료= 금융당국은 그 어느 때보다 좀비기업 퇴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금융권의 ‘핫이슈’가 되면서 국민들의 이목이 쏠리자 부담도 점점 가중되는 모양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옥석가리기를 당부하기도 하고,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C등급 기업은 워크아웃으로 조기 정상화를 돕고 D등급에 대해선 회생절차 등을 통해 신속한 시장 퇴출을 유도하겠다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국회 정무위원회 논의과정을 통해 일몰 기한을 오는 2018년 6월까지 2년 6개월 연장하기로 잠정 합의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개정작업을 연내에 완료할 계획이다. 개정된 기촉법은 채권자ㆍ채무자(기업)의 범위가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특히 채무자는 기존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이 포함된 ‘모든 기업’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중소기업 이어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전 업종 확산 예상= 중소기업 1934곳에 대한 신용위험평가가 지난달 마무리됐다. 그 결과 175개 중소기업이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이 중 70곳은 워크아웃을 진행하며, 105개 기업은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이는 다음 달 발표되는 대기업 신용위험평가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대기업 살생부가 산업 전반에 일으키는 후폭풍은 중소기업과 비교해 그 규모나 영향력에 있어 훨씬 거대하다. 중소 협력사나 계열사까지 미치는 여파가 크고, 이에 따른 은행권의 충당금 부담도 훨씬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하반기 대기업 신용위험평가 대상에 오르는 기업 수는 330곳으로 추정된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상반기 신용공여액이 500억원 이상 대기업 가운데 부실 위험이 있는 572개사를 평가했으며, 이 중 35곳이 구조조정 대상 명단에 올랐다.
상반기 대기업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에서 B등급을 받은 200여곳을 대상으로 재점검에 나섰으며, 여기에 각 채권은행이 ‘워치리스트’로 분류한 기업 100여곳도 추가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대기업의 부실은 전 업종으로 확산할 전망이다. 취약업종에 속한 기업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전이되는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이번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 석유화학·건설·해운 업종 기업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주로 오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범정부 차원의 산업 구조조정 추진의 뇌관이 된 조선업종은 이미 일정 수준 정리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조선업 구조조정 진행중…기업 간 M&A 활발= 채권단은 이미 조선업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관련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4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통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했으며, SPP조선 매각 절차도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또한 성동조선해양은 삼성중공업과의 경영협력 협약 체결로 ‘위탁경영’의 형태를 밟고 있고, STX조선해양의 경우 채권단이 회의를 열어 4500억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해당 지원액은 과거 채권단이 지급 결의하고 지금까지 지원되지 않은 미집행금이다. 이번 지원액은 선박건조 등 운영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금융당국과 채권 은행들은 시장 재편이 진행 중인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일부 취약제품군에 대해선 업계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건설 업종에 대해서는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기업의 부실화를 막기로 했다.
해운 업종은 부실기업에 대해 자율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합병 및 매각설로 홍역을 치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원양선사는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