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75년 12월, 국내 첫 고유모델인 현대차 '포니'가 출시됐습니다.
현대건설 자동차사업부에 시작한 현대차는 미국에서 포드 코티나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이었지요. 고유 모델의 출시 자체가 큰 이슈이자 기적이었습니다. 초기 현대차(정확히는 현대산업 자동차사업부)의 생산량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하루 종일 공장을 돌려봐야 3~4대를 조립하는데 그쳤습니다. 대부분이 수작업이었지요.
그렇게 40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그룹은 하루에 차를 몇 대나 생산하고 있을까요. 미국과 중국,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 총 9개국 생산공장에서 연간 800만대의 신차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한 번 따져볼까요. 연간 800만대는 3교대 풀가동 기준으로 하루 약 2만2000대의 생산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간당 910여대, 1분에 15대를 만드는 규모지요. 간단하게 4초에 한 대씩 신차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현대차, 이탈디자인 쥬지아로를 만나다= 현대차그룹 성장의 출발점은 단연 포니였습니다. 고유모델 포니는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당시 현대자동차 사장)이 주도했는데요. 포니 정으로 불렸던 그에 대한 많은 일화는 지금도 자동차 산업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초기 정세영 당시 현대차 사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위해 이탈리아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30대 후반의 젊은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를 만났습니다. 쥬지아로는 폭스바겐 '골프'를 디자인했던 주인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니 이후에도 대우차 '라노스'와 '누비라', '레간자' 등을 디자인했고 쌍용차 '렉스턴' 역시 그의 작품입니다.
쥬지아로의 감성에 깜짝 놀랐던 정세영 회장은 곧바로 계약을 맺고 신차 개발과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쥬지아로는 포니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요즘도 국제모터쇼에는 하늘을 날아갈듯한 콘셉트카가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는데요. 4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쥬지아로가 이끄는 이탈디자인(회사명)에서도 포니를 위한 콘셉트카를 먼저 디자인했습니다. 이름은 현대 '포니 쿠페'였지요.
◇플랙시블 디자인… 첨단 이미지 가득= 트렁크를 싹둑 잘라낸, 이른바 해치도어 타입의 콘셉트카였습니다. C필러(차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기둥, 앞쪽부터 A, B, C필러로 부른다)를 뒤로 길게 늘려낸, 당시 기준으로 첨단 디자인이었지요. 날렵한 모습은 지금 봐도 엄지손가락이 ‘척’ 올라갈 만큼 멋진 균형미를 자랑합니다.
여기에 디자인을 조금만 바꾸면 후륜 구동, 전륜 구동, 미드십(엔진을 가운데 장착하는 구조, 고성능 슈퍼카에 많이 쓰인다) 구성도 가능한 플랙시블 디자인이었습니다.
디자이너 쥬지아로는 이같은 포니 콘셉트를 바탕으로 양산차 포니를 디자인했습니다. 이미 한국 시장에서는 새한자동차의 '제미니'와 기아산업의 '브리사'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요. 이들과 달리 직선이 뚜렷한 포니는 철철 넘치는 세련미를 앞세워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포니 쿠페 콘셉트카… 백투더 퓨처의 '드로리안'으로=그렇게 포니는 1982년까지 7년여 동안 거리를 누볐습니다.
마침내 1982년 등장한 '포니2'에게 자리를 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요. 이전보다 한결 세련미가 넘쳤던 포니2는 또다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포니2는 3도어 모델과 함께 현대차에게 ‘후속모델 개발’이라는 노하우를 안겨준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북미 수출을 위해 이른바 '5마일 범퍼'로 불리는, 그러니까 범퍼를 두툼하게 뽑아낸 수출형도 나왔습니다. 이 차의 이름은 '포니2 CX'.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 이름에 서브 네임을 추가한 차였는데요. CX는 캐나다 수출형(Canada Export) 자동차를 의미했지요.
그렇게 현대차는 포니와 포니2, '엑셀'과 '프레스토'로 명맥을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이후 준중형차인 '스텔라'가 중형차 '쏘나타' 시리즈로 업그레이드됐고, 그 자리에는 엑셀의 후속인 '엘란트라'가 투입됐습니다. 결국 포니로 출발한 소형차 라인업은 엘란트라를 거쳐 현재 '아반떼'까지 이어진 셈이지요.
포니에서 시작한 소형차들은 값싸고 유지비가 적게드는 자동차라는 목표를 충직하게 일궈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 모두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근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잠깐. 포니 쿠페 컨셉트가 충직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사이 포니의 뿌리가 됐던, 우주선(?) 모양의 포니 쿠페 콘셉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탈디자인의 쥬지아로는 현대차에게 포니 콘셉트를 전달하고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포니 양산차가 등장했던 1975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작은 자동차 회사 하나가 출범했는데 이 회사 역시 쥬지아로에게 개발과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회사의 주인은 엔지니어 출신의 ‘존 드로리안’. 드로리안은 멋진 스포츠카를 염두에 두고 회사를 차렸고, 회사 이름을 고민하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지었습니다. 참 생각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멋진 이름이 탄생한 것이지요.
그렇게 등장한 자동차 회사가 바로 ‘드로리안 모터 컴퍼니’ 즉 DMC입니다. 드로리안에게 소형 2도어 쿠페 디자인을 의뢰받았던 쥬지아로는 문득 포니 쿠페 콘셉트를 떠올렸습니다. 균형미 넘치는 콘셉크카의 디자인은 쥬지아로의 머릿 속을 떠나질 못했거든요.
이때 쥬지아로는 포니 콘셉트를 바탕으로 DMC의 새 스포츠카를 디자인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포니는 평범한 소형차지만 드로리안은 스포츠 쿠페를 원했으니 마무리는 새롭게 다시 해야할 상황이 됐지요.
결국 차별화에 나선 쥬지아로는 DMC 새 모델을 스포츠카답게 디자인합니다. 바로 차 문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이른바 걸윙-도어 방식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차의 이름이 DMC의 '드로리안 12'였습니다.
◇BMW와 로터스 디자인에 영감 작용해= 이쯤되면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아! 그 차구나”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겠군요. 네, 맞습니다. 이 드로리안은 1984년대 타임머신을 소재로한 할리우드 영화 ‘백 투더 퓨쳐’에 등장했던 그 멋진 쿠페 자동차입니다.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자동차 디자이너 쥬지아로는 이후 독일 BMW로부터 새로운 미드십 스포츠카 디자인을 의뢰받았습니다. 당시 BMW는 벤츠에 견줄만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에 버금가는 고성능 슈퍼카의 빈자리가 늘 아쉬웠습니다.
결국 BMW의 제안을 받아든 쥬지아로는 1978년 BMW 미드십 슈퍼카의 시초인 'BMW M1'을 디자인했습니다. 이 BMW M1 역시 2도어 타입에 해치도어를 길게 늘어트린, 마치 포니 쿠페를 연상케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후 쥬지아로는 이후 영국 로터스의 2인승 스포츠 쿠페 에스프리를 디자인하면서 포니 쿠페의 영감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앞서 페라리 250GT를 디자인했던 그는 페라리를 위한 다양한 디자인을 남겼고, 이 가운데 포니 쿠페를 근간으로 한 멋진 콘셉트카도 여럿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콘셉트에서 영감을 얻어 등장한 모델이 페라리 '테스타로사 V12'입니다.
당시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는 커다란 궤를 함께 했습니다. 세단 아니면 해치백이 주를 이뤘으니까요.
손가락에 꼽을 만한 몇몇 디자이너들이 세계 자동차산업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동차 유행의 갈래가 요즘처럼 많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대부분의 차들이 비슷한 레이아웃에서 출발점을 잡기도 했습니다.
포니의 뿌리가 됐던 콘셉트카는 멋진 드로리안과 로터스 에스프리, BMW M1에서 페라리로 거듭나며 고성능을 추구했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의 포니는 양산이라는 절대 목적을 충직하기 위해 소형차에 머물게 됐지요.
아쉬운 점은 포니 탄생 40주년이 됐음에도 현대차는 새로 출시한 제네시스 브랜드인 'EQ900'에만 눈길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를 바탕으로 멋진 미래를 개척하는 현대차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동갑내기인 저라도 축하를 해야겠네요. "40주년 축하합니다 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