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대학 동기는 ‘딩크족’입니다.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죠. “평생 둘만 놀면 지겹지 않으냐?”란 친구들의 딴지에도 동기 녀석은 애 낳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과장 명함 받으려면 3~4년은 더 일해야 하고요. 재작년 분양받은 아파트는 빚이 절반이랍니다. 유학까지 다녀온 아내도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하고요. “제대로 키우지 못할 바엔, 그냥 둘이 재미있게 살자”라는 게 동기 부부의 결론입니다.
요즘 제 동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 많으시죠? 한 취업포털에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미혼여성 10명 중 2명이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출산율이 10년째 줄고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3년 후 닥칠 인구절벽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우선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임산부가 검사할 때 내야 하는 병원비의 본인 부담도 5%로 줄고요. 고운맘카드로 결제하면 사실상 공짜입니다. 아! 국민행복카드로 이름이 바뀌었죠?
집 걱정 때문에 출산을 미루는 신혼부부들에게 13만 5000가구의 임대주택이 공급됩니다. 임금피크제를 확산해 37만개의 일자리도 만들 계획입니다. 엄마의 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빠의 달’도 3개월로 늘리고, 경단녀들의 국민연금 보험료도 일시불로 받기로 했습니다.
내용만 보면 참 알찹니다. 결혼과 출산, 노후대책까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기대와 달리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공무원 중에 애 키우는 사람 없나요? 낳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키우는 게 걱정이 돼 안 낳는 겁니다.”
가장 뭇매를 맞고 있는 일자리 대책부터 살펴볼까요? 정부는 임금피크제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앞으로 5년간 37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취직→결혼→출산’의 연결고리 중 취업 걱정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 체감 실업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28%입니다. 구직자 10명 중 3명은 취업을 못 하고 있단 얘기입니다. DJ 때부터 취업난 해결하기 위해 대책을 쏟아냈는데도 달라진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됐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 대책을 접한 순간 ‘일자리 늘겠네’란 기대보다 ‘과연 될까?’하는 의구심을 먼저 했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도 현실은 여전히 미생입니다. 한 취업포털서 2년 전 조사를 했는데요. 4년제 대졸자들의 중소기업 평균 월급이 208만원이랍니다. 아이 1명 낳아 대학을 졸업시키는 데까지 3억원이 넘게 든다하니, 중소기업에 다니는 예비맘이라면 월급의 절반을 오롯이 아이를 위해 모아야 합니다.
두 사람 먹고 살 정도로 벌어도 걱정은 매한가지죠. 대부분 빚이니까요. 올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얼마나 오른 줄 아십니까? 평균 5500만원 뛰었습니다. 숨만 쉬고 살아도 월급(도시 근로자 평균 연 소득 5213만원)으로 감당이 안 됩니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13만 5000호나 공급한다고 했지만 거기에 들어가려면 ‘빚’을 져야 합니다. 신혼부부 입장에선 결국 ‘기-승-전-빚’입니다.
더 큰 문제는 키우는 겁니다. 지난해 공립유치원 수용률은 22%에 불과합니다. 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입학 경쟁률이 20대 1에 달한다고 하니 ‘유치원 보내기가 로또보다 더 힘들다’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신혼부부 절반 이상이 육아수당보다 탁아시설을 더 늘려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뉴스에는 만날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삭감’, ‘CCTV 의무설치 코앞…설치비율 50%’ 기사가 쏟아집니다. 결혼 3년차 엄마들의 사직률이 70%가 넘는 이유가 있네요.
정부는 ‘아빠의 달’ 연장(1→3개월)이 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엄마의 육아 부담이 줄면, 경단녀 문제도 함께 해결될 거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남성 직장인 가운데 육아때문에 휴직 신청서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엄마들도 출산휴직 3개월을 다 쓰면 눈치가 보여서 복직합니다. 2년마다 계약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은 더 심하겠죠.
오늘 점심에 육아휴직 중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너무 크게 낳아 골반이 틀어져 치료를 받고 있다더군요. 나이 먹고 애 낳으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저보고 산전 보약을 챙기라고 조언합니다. 내년 1월 복직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하네요.
얼마 전에는 몸살을 심하게 앓아 약을 먹는 바람에 모유 수유도 끊었다는데요. “산후조리하는 사람이 왜 감기가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첫째 유치원 알아보느라 찬바람을 맞았답니다. 교구비에, 체험비 다 합쳐 월 40만원이 넘는 유치원도 겨우 보냈다며 안심하더군요. 드라마 '미생'의 선 차장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습니다.
친구의 고충을 들으니 걱정이 됐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도 출산 계획을 미루고 있거든요. 내후년에 갖자고 얘기는 했지만 제 나이를 생각하면 초산이 너무 늦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번 저출산 대책을 보고도 애 낳을 생각이 안 드는 거 보면 ‘딩크족’으로 사는 제 동기 녀석이 차라리 나은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