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여드레가 지났습니다. 세밑 시간은 빛보다 빠르더니, 세초의 나달은 참 더디게 흐릅니다. 크리스마스에서 신정까지 이어진 주4일 근무에 고새 몸이 적응했나 봅니다. 그래도 오늘(8일)은 버틸 만하네요.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니까요. 기분이 좋습니다.
<4화, Can’t help ~ing> #미란이네 현관, 등교하는 정환이 신발을 신고 있다.
성균: 오늘 저녁에 외식 있는 거 알재? 일찍 들어 온나~
정환: 오늘 야자 있는데요?
성균: 오늘 토요일인데…. 죽고 싶나?
정환 : 5시까지 오면 되죠?
<16화, 인생이란 아니러니~!> #덕선이네 대문 앞, 일화가 보라를 고시원으로 보내 놓고 눈물 흘리고 있다.
덕선: 아빠는? 토요일인데 늦는데?
일화: 일이 많이 바쁜가 보드라. 이런 날은 좀 일찍 들어오면 좋을 낀데….
그래서 ‘응답하라 1988’ 속 대사들이 낯섭니다. 대학생때 부터 15년 동안 한 주에 이틀을 쉬었습니다. 반공일이란 단어가 생소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지만, 주 5일근무제(이하 주 5일제)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공론화된 건 1998년입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죠. 반나절 더 쉬는 것 뿐인데, 이 제도가 안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우려한 재계의 반대가 심했죠.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8시간×5일)으로 줄이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꾸렸습니다. 2000년에는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도 구성했죠. 2년간의 논의에도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정부는 장관회의를 거쳐 단독으로 입법안을 마련했습니다. 개정안은 2003년 국회를 통과했고, 2004년 7월부터 주5일제가 본격 시행됐습니다.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주 5일제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1963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주 40시간 근로’를 총회 권고 사항으로 채택하면서 제도가 빠르게 확산됐죠. 중국은 1995년부터 시행했고요. 일본은 1999년에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미국(1938년)은 그 역사가 78년이나 됩니다.
‘놀토(노는 토요일)’가 생기자 사람들은 여행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제도시행 첫해인 2004년, 국민 1인당 평균 국내여행 총 일수는 9.26일을 기록했습니다. 이듬해엔 9.94일로 늘어났고요. 3년 차인 2006년엔 10일(10.55일)을 넘어섰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약 8일에 불과했는데 말이죠.
효과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여행, 외식, 엔터테인먼트 등 여가 관련 시장 규모가 10%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2009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도시 가구의 여가활동 지출비는 12만4000원으로 조사됐습니다. 1985년(1만3000원)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같은 기간 농촌 가구도 5000원에서 6만원으로 씀씀이가 커졌습니다.
시장이 커지면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죠. 당시 정부 발표에 자료에 따르면 주 5일제 시행으로 65만개 일자리가 더 생겼다고 합니다.
여가 산업도 발전하고, 일자리도 늘어나자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1만4173달러에서 2005년 1만6438달러로 16% 늘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직전까지 성장세가 이어졌죠.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해지면서 경제가 침체될 것이란 기업들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통계로 증명된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한국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이지만 당사자 합의(12시간)와 주말ㆍ휴일 근로(16시간)를 합치면 최대 68시간을 일합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057시간에 달합니다. OECD 연평균 근로시간(1706시간)보다 351시간 더 깁니다.
생산성이 좋으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0달러입니다. 1시간 일해서 30달러짜리 상품밖에 못 만든다는 얘기입니다. 노동생산성이 가장 좋은 노르웨이(87달러)에 3분의 1수준입니다. 미국(65달러), 일본(40달러)과도 큰 차이를 보이죠.
혹시 이 포스터 보신 적 있으십니까? 디자인 용품을 제작ㆍ판매하는 에이스그룹의 포스터입니다. 이 회사는 올해부터 주 4일제를 시작했습니다. 화장품 제조사인 에네스티 직원들은 지난 2013년부터 일주일에 나흘만 일합니다. 4시 영업마감으로 최경환 부총리한테 ‘쓴 소리’를 들었던 금융권도 탄력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죠.
10년 뒤 ‘응답하라 2016’ 속엔 ‘불금’이 아닌 ‘불목(불타는 목요일)’의 풍경이 담기지 않을까요? 드라마를 보며 “어떻게 금요일에도 일할 수 있지?”란 생각을 하겠죠. 하루빨리 그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그보다 먼저, 오늘은 ‘칼퇴(칼같은 퇴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