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이치현(愛知県) 나고야(名古屋)시 덴파쿠(天白)구에는 조디아 어딕트(ZODIA addict)라는 골프용품 전시관이 있다. 일본 조디아골프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이 전시관에는 33년 경력의 골프클럽 장인 지바 후미오(55ㆍ千葉文雄)의 수제 아이언 헤드가 모델별로 진열돼 있다. 전시관 입구에는 지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한 그의 프로필 액자가 눈길을 끈다.
사실 지바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명장(名匠)이다.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일본의 ‘골프 영웅’ 아오키 이사오(74)의 아이언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으로 제작하면서다. 이후 국내외 유명 프로골퍼들은 그에게 클럽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그의 고향이자 작업장이 위치한 효고현(兵庫県)으로 몰려들었다. 33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골프채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실이다.
흥미로운 건 그는 골프를 전공하지도 기계나 공학에 대해 배운 적도 없다는 점이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샐러리맨으로 일하다 자연스럽게 골프를 접하면서 골프클럽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른 누군가가 만든 수제 단조 아이언을 본 뒤에는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그의 인생도 바뀌게 됐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단조 아이언 헤드는 일본 골프클럽의 역사이자 자존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일본 최고의 골프클럽 명장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장인의 기술이 제아무리 뛰어난들 글로벌 골프 브랜드의 생산성과 마케팅을 당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제 단조 아이언의 타구감과 성능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골퍼에게 꼭 맞는 클럽을 제공한다’라는 신념으로 번거로운 제작공정을 고집했다. 그리고 글로벌 브랜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기술력을 갖게 됐다. “내 손으로 골프채를 만들어보겠다”며 망치 하나로 쇠 덩어리를 두들기던 히메지의 시골 청년이 만든 기적이다.
여기서 우리를 돌아볼까.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골프 강국이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는 박인비(28ㆍKB금융그룹)의 5승 포함 한국 선수가 총 15승을 장식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는 이보미(28ㆍ혼마골프)의 7승을 포함해 17승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산업적으로는 국산 골프클럽 브랜드 하나 없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고학력+고스펙 엘리트 인재가 넘쳐나는 대기업에서도 국산 브랜드 골프클럽을 만들지 못했다. 막대한 개발 비용, 대중화와 동떨어진 정부의 골프 정책, 국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차가운 시선 등 이유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지바는 고학력자도, 부유한 환경도, 유명 골프 브랜드와도 거리가 멀었다. 옛 시골 대장간을 연상케 하는 작은 공방에서 망치를 두들기며 이름 없는 골프채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저 열정과 기술력만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명장이 됐다.
한국 사회에서 골프클럽 명장이 탄생하는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공계를 꺼려하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낡고 고된 골프클럽 만들기에 도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첨단 정보기술(IT) 초일류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지바는 말했다. “나는 대학을 다닌 적도 골프 이론을 배운 적도 없다.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망치 하나만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다.” 지바의 위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120만 청년실업 시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