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수 엠에스티 대표
학창시절 막연하게 사업가의 꿈을 꾸었다. 취직해 일하다 보면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item)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분야에서 이름 석자를 알리겠노라고.
나는 철의 가공 기술을 연구하는 금속 및 재료공학 분야에서 학업과 연구 활동으로 30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 기간은 바로 산업계에 진출하기 위한 바닥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배움의 끝과 함께 시작된 사회 첫발은 제조업을 영위하는, 업력 18년된 표면처리 임가공 중소기업이었다. 표면처리 제조업은 뿌리 산업, 3D 업종 등의 수식어가 붙는 기술보다 제품화가 더 요구되는 분야이다. 통상 ‘고등연구원이 중소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란 말도 있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구원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호기는 보기 좋게 부서졌다. 연구 및 신제품 개발 업무를 맡았음에도 기본적인 연구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이 업체에서 내 영역을 찾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신입사원으로서 연구가 아닌 생산 품질 개선을 주로 맡다 보니 힘든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명확한 근거보다 품질만 확보되면 생산이 진행되다 보니 기술로 경쟁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남의 얘기였다. 더구나 중소기업이라 변변한 연구시설이 없어 연구·개발(R&D) 기반을 정부 지원의 산학 연구협약으로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지난한 노력 끝에 4년여 만에 이 업체의 연구소장이 됐다. 소장을 역임하면서 비로서 공정기술 및 신기술 적용을 위한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됐고, 동종 분야 최고 기술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 업체는 세계 최초로 금속 알러지 방지 표면처리 기술을 휴대전화 부품에 적용하면서 대기업 1차 밴더로 등록되고 코스닥에도 상장됐다. 동종 분야 3대 기업으로 성장한 이면엔 신기술 개발이 큰 기반이 됐다.
이처럼 기업의 성장과 인력의 확대는 이뤄졌으나 연구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미흡했다. 연구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R&D 투자에도 인색한 이 업체에서 나의 꿈을 실현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10여년 열정을 바쳐온 이 업체를 나와 다시 학업의 길을 선택했다. 이 업체에서 일하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고가의 시험분석 장비를 활용한 기술 개발을 진행하면서 추후 가공 아이템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였다.
학위 과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창업·중소기업·출연연구소·교육자·대기업 등 5가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향후 30년을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창업이 유일한 방법이었고, 표면처리 분야의 기술을 바탕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국내 표면처리 시장의 규모와 기업의 특징 등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장점을 바탕으로 기술 경쟁력을 갖추면 비록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고객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씨앗을 뿌리고 가을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적어도 40대에는 젊음과 열정의 씨를 뿌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의 두려움과 자금, 영업 등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시기 지인으로부터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진행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로 입학해 창업 공부를 시작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교육을 들으며 창업 노하우와 성공 비전을 갖출 수 있게 됐다. 특히 당시 공부하면서 굳힌 생각대로 기술 기반 중소기업으로 창업했다.
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 오랫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기업, 우리의 기업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꿈은 이론에 국한된 전문가가 아니고 다양한 경험을 갖춘 실력 있는 표면처리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표면처리 분야에서 고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당당히 조언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이러한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했고 기업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나의 꿈이 아니라 직원들의 꿈이다. 나는 경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며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능력보다 우리의 능력
잦은 야근에도 서로 의지하고
즐겁게 일하며 자신의 꿈 실현
기업이 든든한 뒷배 역할 할것
직원들에게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엔지니어는 기술이 최우선이고 나는 엔지니어다’라는 말이다. 기업이 가장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나는 시스템에 천착했다. 우선 표면처리 산업의 특성상 부품 생산 거점들은 근거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국내에 4개의 거점을 만들고, 그 거점에 직원들이 운영하는 회사를 만든 뒤 이를 총괄하는 경영전문가와 R&D 센터를 구축했다. 이런 시스템으로 각 거점이 모두 기술 경쟁력을 갖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나의 꿈과 직원의 꿈을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하려면 일정 규모까지 내가 직접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 다만, 그 규모의 확장은 직원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업 초기 창업 지원금으로 신기술 개발 중 금속 코팅(coating) 후 폐기되는 가공 지그(jig)의 재가공(metal stripping) 방법에 대한 개발 의뢰가 들어왔다. CVD(chemical vapor deposition) 공정에 사용되는 지그는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열에서 금속 반응성이 없고 변형되지 않는 재질이 사용되는데, 이를 폐기할 경우 폐기 비용과 신규 구입 비용을 줄이고자 가공 요청이 들어왔던 것이다. 연구 시설로 코팅층을 제거한 지그를 만들어 전달한 후 3일 만에 고객사에서 직접 찾아와 설비 구축 일정과 납품 협약을 맺자는 것이었다. 창업 후 개발만 진행했고 매출이 크지 않았던 시기에 호조건의 계약이었다. 고정 제조 업무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고마웠던 어려운 시기에 호조건의 거래 제시였다. 제조 기반도 없는데 가공 일정 및 납품 일정까지 받고 보니 막막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제조 공간을 확보했고, 정부기관을 통해 자금도 확보해 표면처리 제조 양산 설비를 구축하였다.
최초의 제조 매출이 발생했을 때는 잊지 못할 감동이 있었다. 지그 가공(metal stripping) 공정 1개로 제조 활동을 시작했고, 2명의 직원과 함께 직접 생산과 포장, 납품을 처리하면서 직원들과 동질감을 형성했다. 더 좋았던 것은 그 고객사를 통해 이스라엘·일본·중국·인도의 기업에까지 물량이 연계되어 제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 운영을 하는 것은 물론, 제조 시설 구축과 연구기반 인프라도 구축하고 있다. 시설의 확장과 함께 향후 기술 개발이 필요한 자동차 분야 연료전지 관련 부품과 휴대전화 부품 개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중공업 관련 부품의 국산화까지 다양한 기술 개발 의뢰가 이뤄지고 있다. 기술 개발이 모두 제품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술 개발이 필요한 고객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것을 보면 우리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소기업이 그렇듯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도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기업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기업을 영위하면서 반복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업 진단 및 지도의 능력(기술·경영 지도사)으로 우리 회사를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면서 기업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발전 속도가 느린 단점도 있다. 그러나 투자가 그릇되지 않게 냉철한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도가 느린 것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특히 이런 철학을 직원과 공유하면서 직원의 발전과 회사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다. 개인의 꿈이 기업을 통해 실현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기업을 하는 이유 아닌가. 혼자가 아닌 우리가 잘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보다 우리의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력>
2003.02 영남대학교 금속공학과 공학석사
2003.02~2010.08 (주)보광사 입사 및 연구소장(코스닥 상장사)
2010.08~2012.07 영남대학교 박사과정
2012.05~현 엠에스티 창업 및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