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수업, 졸업식은 어떤 문양인가?[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6-02-24 07:39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스티브 잡스는 지난 2005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갈망하라, 우직하게"라는 표현으로 잘 알려진 졸업축사로 눈길을 끌었다. (사진=뉴시스)

꽃가게는 최대 성수기인 요즘 꽃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이다. 한겨울의 칼바람보다 매서운 한기로 가득하다. 대학교 졸업식장이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보다 불참한 학생이 더 많다. 한 과정을 마감하고 새 출발선에 선 사람들의 마지막 수업, 대학교 졸업식은 그 존재 의미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의미가 거세된 허접한 형식만이 초라하게 진행될 뿐이다. 취업난으로 인해 졸업과 함께 백수 시작이라는 절망과 경기 침체가 몰고 온 대학교 졸업식 풍속도다.

중고교 졸업식은 어떤가. 서울대, 고대, 연대 등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전년보다 떨어져 실망했다는 학교 이사장의 당당한(?) 축사가 명문대에 가지 못한 졸업생들을 졸지에 낙오자로 전락시킨다. 명문고와 명문대 진학 학생은 승자로, 그리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패자로의 규정이 축사라는 미명하에 거침없이 마지막 수업을 장식한다. 희망을 품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어린 학생들의 가슴에 좌절의 상처가 새겨진다.

졸업식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는 마지막 수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경기침체와 취업난, 명문교 지상주의 등으로 가장 의미 있어야 졸업식은 철저하게 망가지고 있다.

여러 이유로 학생들마저 외면하는 졸업식의 추락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가슴에 각인된 두 개의 졸업식이 떠오른다. 두 개의 졸업식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우쳐준 큰 의미를 담보한 마지막 수업이었다. 하나는 졸업생으로 참석한 시골 중학교 마지막 수업이고, 또 하나는 선배의 졸업 축하와 함께 축사하는 총장의 퇴진 반대를 위해 참석한 대학교 졸업식이다.

2, 3학년 담임을 했던 전남 나주 남평중학교 은사, 김종채 선생은 자신의 월급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몰래 납부금을 대신 내주고,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학생에게 축구경기를 제안해 일부러 진 다음 자장면을 승리의 선물로 안기며 주린 배를 채워줬다.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을 포기하려는 제자를 위해 장학금을 주선해 입학을 도왔고 부모 없는 가정의 아이에게는 아버지 역할까지 했던 참 스승이었다. 은사님은 졸업식에 참석한 60여 명의 반 학생 모두에게 격려와 당부가 담긴 손편지와 함께 만년필, 소설, 축구공 등 학생의 취미와 성격, 진로를 고려한 선물을 했다. 그리고 따뜻한 악수로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했다.

지금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1985년 2월 25일 고려대 졸업식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학병으로 있다 탈출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이후에는 고려대 교수로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강의하며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긴 역사를 볼 때 진리, 정의,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가르침을 줬던 故 김준엽 총장이 참석한 졸업식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김준엽 총장에게 국무총리와 장관 등 고위직을 10여 차례 제안했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다 잡혀간 제자들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스승이라는 자가 어떻게 그 정부의 관직에 몸담을 수 있겠는가”라고 거절했다. 민주화 시위를 해 구속된 학생들을 제적시키라는 권위주의 정부의 외압에 “학칙에는 총장에게 그런 권한이 없다”며 맞서다 1985년 2월 25일 고려대 졸업식에서 축사와 함께 퇴임사를 해야 했던 김준엽 총장은 그 존재 자체가 마지막 수업의 큰 가르침이었다. 그 어떠한 현란한 언어의 성찬보다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치고 진리와 정의, 학생들을 사랑한 삶을 살아왔던 김준엽 총장의 인생 자체가 가장 의미 있는 축사였다.

졸업식 하면 어떤 이는 “공감으로 세상을 바꾸라”(빌 게이츠) “계속 갈망하라, 우직하게”(스티브 잡스)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도전에 더 많은 목적이 생긴다”(마크 저커버그) 등으로 대변되는 유명 인사의 졸업 축사를 떠올리거나 어떤 이는 상처와 아픔을 준 졸업식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의미 없는 학교 행사로 인식하기도 한다. 당신의 마지막 수업, 졸업식은 어떤가?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