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에서 뭐 살 거 없어?”
최근 에스티로더 ‘갈색병(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을 샀습니다. 동생이 발리 여행을 간다는 말에 면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주문을 했죠. 가격은 100㎖에 173달러(약 20만3000원). 결제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까지 “백화점은 50㎖에 15만원이니까…. 알뜰쇼핑 맞아”란 자기 최면이 필요한 ‘사악한 값’이었습니다.
동생이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30달러(약 3만5000원)짜리 로레알 수분크림 세트까지 함께 결제하니 200달러(약 23만원)가 훌쩍 넘더군요.
하지만 전 그 돈을 다 주진 않았습니다. 우선 위클리 적립금 1만원을 받았고요. 출국 정보를 입력해 5000원도 깎았습니다. 복불복 룰렛과 모바일 결제를 통해 각각 3000원, 9000원도 추가로 덜어냈죠. 물론 200달러 이상 구매자한테 주는 15% 할인쿠폰도 챙겼습니다. 최종적으로 제가 결제한 금액은 18만원입니다. 두 상품 모두 면세 전용이긴 하지만 시중가와 비교하면 ‘반값’에 산 셈입니다.
“이렇게 장사해서 남는 게 있을까?”
을(乙) 주제에 갑(甲) 처지까지 걱정해주는 흔치 않은 순간이죠. 해외여행 다녀오신 분이라면 저처럼 ‘난 그동안 호갱(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손님)이었나?’란 찝찝한 기분과 함께 ‘면세점은 얼마나 벌까?’란 궁금증 가져보셨을 겁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 시장규모는 9조2000억원에 달합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10% 넘게 성장했죠.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우선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업계 1위 롯데 소공점은 지난해 2조2000억원을 벌었습니다. 접근성이 좋은 신라 장충점은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요. 롯데 월드타워점(611억원), 워커힐(287억원), 동화(284억원), 롯데 코엑스(279억원) 등도 문전성시를 이뤘죠. 최근 문을 연 신라아이파크ㆍ갤러리아63ㆍ에스엠면세점은 아직 손님이 뜸하긴 하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저물가ㆍ저성장의 그늘은 딴 나라 얘깁니다. 심지어 올해는 전망이 더 좋다고 하네요. 전문가들은 중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음을 고려하면 올해 면세점 시장규모는 11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면세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만큼 아무나 가질 순 없죠. 정부는 면세점 사업권을 신고제가 아닌 특허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쟁 입찰을 통해 5년 단위로 면세 사업권을 부여하죠. 지난해 7월과 11월 입찰이 진행됐는데요. 두산ㆍ신라ㆍ신세계ㆍ하나투어ㆍ한화 5곳이 황금티켓을 거머쥐었고, 롯데(월드타워)와 SK(워커힐)는 사업권을 반납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이투데이에 게재된 ‘면세점 황금티켓 거머쥔 신세계ㆍ두산’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오늘(21일) 이투데이 1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난해 일단락 된 줄 알았던 면세점 뉴스가 최근 다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사업권 기한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사업자를 추가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하네요. 국내 면세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주 열린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이달 말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정책 변화 예고에 ‘밥그릇’을 둘러싼 사업자들의 기싸움이 치열합니다. 황금티켓을 거머쥔 5개 사업자는 “사업자 난립으로 면세는 물론 관광업까지 하향 평준화 될 것”이라며 격렬히 반대하고 있고요. 유치전에서 밀려난 롯데와 SK는 사업권을 기회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죠.
독과점과 난립, 좁혀지기 힘든 쟁점입니다. 한국 관광업의 ‘십년지대계(十年之大計)’인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오락가락 정책으로 시장 혼란을 키운 정부의 자성도 있어야겠죠.
적립금과 쿠폰 받으며 ‘갑의 주머니’를 걱정했던 고민은 묻어두고 당분간 면세점 뉴스에 눈과 귀를 열어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