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을 대상으로 1000억원대 사기 대출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디지텍시스템스가 금융감독원 고위급 직원에게도 뇌물을 건넨 정황이 포착됐다. 관계회사들과의 막대한 채무 지급보증까지 포함하면 사기 대출 규모도 기존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 남부지검 금조2부(부장검사 박길배)는 전 금융감독원 부국장(2급)을 지낸 A씨를 디지텍시스템스 관련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던 A씨는 2013년 이후로 주가가 하락하자 당시 디지텍시스템스 회장 유모씨에게 9000여만원 상당의 손실 보전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그 대가로 금감원의 심리조사를 무마해주겠다는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금감원은 2012년 말부터 디지텍시스템스의 분식회계 혐의 등을 파악하고 특별 회계감리를 진행 중이었다. 2014년 2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유모씨를 비롯한 경영진을 검찰 고발조치했다. 당시 검찰에 넘겨진 경영진 4명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회삿돈 횡령과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등의 유죄가 확정돼 징역 3~7년을 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18일에는 산업은행 본점 팀장이 디지텍시스템스에 250억원 대출을 돕고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금융 브로커 3명도 수출입은행과 대형 시중은행 대출을 알선한 사실이 드러나 은행 내부 조력자를 추가 수사 중인 상황이다. 여기에 금감원 2급 직원의 비리 혐의까지 더해지면서 금융당국과 국책은행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사기대출 규모는 기존 1000억원에서 두 배 이상 확대될 가능성도 엿보이는 상황이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KB국민은행, 농협 등에서 1000억원가량을 직접 대출받는데 그치지 않고 관계회사 엔피텍과 세종디앤아이 등에 1000억원 상당의 채무 지급보증을 실행했다. 디지텍시스템스의 파산 시기에 맞춰 이들 회사도 모두 파산 절차를 밟았다.
이날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디지텍시스템스는 엔피텍의 채무 671억원에 대해 2013년 10차례에 걸쳐 지급보증했다. 디지텍시스템스를 인수한 유모씨 등은 엔피텍을 인수해 디지텍시스템스의 최대주주로 삼고 이를 근거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부산은행 등 1ㆍ2금융권에서 500억원 가까이 대출받았다.
엔피텍이 대출받은 금액 중 약 300억원은 현재 수감 중인 경영진의 한 명인 최모씨가 대표로 있던 세종디앤아이로 흘러갔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자체적으로도 세종디앤아이 채무 40억원에 대해 보증을 섰다.
이밖에 신길물산, 티엔스, 지와이테크 등에도 수십억원의 채무보증을 섰다. 모두 현재 복역 중인 경영진들이 대표로 있던 회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엔피텍이나 세종디앤아이, 지와이테크 등에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서 채무보증 회사인 디지텍시스템스의 건전성을 믿었을 것이기 때문에 총체적인 사기 ·부실대출이 이뤄진 것”이라며 “과거 비슷한 사례와 마찬가지로 수사를 거듭할수록 부실대출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