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경비원 폭행, 운전기사 폭언… 갑질 처단 나선 ‘병의 반란’

입력 2016-04-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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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정우현 MPK 회장이 '경비원 폭행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출처=미스터피자 홈페이지)

어이가 없습니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정우현 MPK 회장 말입니다. 새로 오픈한 식당에서 자신이 저녁을 먹는 사이, 건물 출입문을 닫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셔터를 다시 올렸는데도 말이죠.

“어디 감히?”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겁니다. 정 회장은 곧장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추가 ‘갑질’ 사례가 폭로되며 불매운동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갑질’ 논란, 이제 화내기도 힘듭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백 명이 탄 비행기를 돌렸고요.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은 기사에게 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이해할 수 없는 횡포를 부렸습니다.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은 탑승지연에 불만을 느끼고 항공사 협력직원의 얼굴을 신문지로 때렸고, 몽고식품 김만식 전 회장은 운전기사의 주요부위를 걷어차 정신을 잃게 했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다이아몬드 수저는 법치국가 밖에 사나?’란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갑질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건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부터입니다. 2013년 이전만 하더라도 갑을 논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에 국한됐죠.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있다’는 희망보다 ‘먹고 사는’ 현실이 더 급하다 보니 갑질은 그저 개인의 문제로 여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고요. 모순된 의사소통 구조 속에서 자라고, 배우고, 경영하는 ‘갑님(?)’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다 같이 잘 살자’는 경제민주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을’이 힘을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2013년 터진 ‘남양유업 사태’입니다. 남양유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주에게 물량을 밀어낸 사건이죠. 이 과정에서 30대 본사 직원이 50대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고요. 이 사태를 계기로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이 제정됐습니다. 이어 ‘갑을관계 기본3법’, ‘백화점 대형마트 납품업자 보호법’, ‘을 위한 계약법’ 등이 줄줄이 발의됐습니다.

(출처=한국경제연구원 '2014년 기업 및 경제 현안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보고서')

을의 눈물을 닦아줄 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어차피 갑님(?)들은 법 밖에 있다’는 불신 때문이죠. 한국경제연구원이 2년 전 조사했는데요. 오너가족이 경영에 참여하는 기업집단의 호감도는 32%에 불과했습니다. 10명중 7명은 재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반(反) 기업 정서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는 59%가 ‘높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일자리 창출(25%)과 준법경영(24%), 사회공헌(12%)을 제치고 ‘윤리경영을 잘하는 기업’(43%)이 1위로 꼽혔습니다. 갑질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큰 지 짐작이 갑니다.

결국 갑의 횡보를 처단(?)한건 법보다 무서운 ‘병(丙)’, 바로 소비자입니다. 불매운동이죠.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되느냐고요? ‘땅콩회항’이 터지기 전 2014년 대한항공의 브랜드 가치는 6위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39위로 수직 하락했죠. 올해 초 22위로 반등하긴 했지만,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습니다.

남양유업은 2년 전 100만원을 넘나들던 주가가 80만원대로 밀려나 3년째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고요. 대림산업은 1분기 실적개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의 ‘팔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MPK는 이틀 만에(4~5일) 시가총액 157억원이 증발했죠.

▲지난해 개봉한 영화 '베테랑'은 재벌의 갑질을 고발한 영화입니다. (출처=CJ E&M)

“평판을 쌓는 데 20년이 걸리지만 이를 잃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미국 거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표상으로 꼽히는 워런버핏의 명언입니다. 오너의 도덕성을 강조한 말이죠.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지위를 악용하는 ‘갑님(?)’에게 그 어느 때보다 꼭 필요한 격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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