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습니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정우현 MPK 회장 말입니다. 새로 오픈한 식당에서 자신이 저녁을 먹는 사이, 건물 출입문을 닫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했다고 합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셔터를 다시 올렸는데도 말이죠.
“어디 감히?” 회장님의 심기를 건드린 겁니다. 정 회장은 곧장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추가 ‘갑질’ 사례가 폭로되며 불매운동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갑질’ 논란, 이제 화내기도 힘듭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백 명이 탄 비행기를 돌렸고요.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은 기사에게 백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이해할 수 없는 횡포를 부렸습니다.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은 탑승지연에 불만을 느끼고 항공사 협력직원의 얼굴을 신문지로 때렸고, 몽고식품 김만식 전 회장은 운전기사의 주요부위를 걷어차 정신을 잃게 했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다이아몬드 수저는 법치국가 밖에 사나?’란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갑질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건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부터입니다. 2013년 이전만 하더라도 갑을 논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에 국한됐죠.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있다’는 희망보다 ‘먹고 사는’ 현실이 더 급하다 보니 갑질은 그저 개인의 문제로 여겼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고요. 모순된 의사소통 구조 속에서 자라고, 배우고, 경영하는 ‘갑님(?)’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다 같이 잘 살자’는 경제민주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을’이 힘을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2013년 터진 ‘남양유업 사태’입니다. 남양유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주에게 물량을 밀어낸 사건이죠. 이 과정에서 30대 본사 직원이 50대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고요. 이 사태를 계기로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남양유업 방지법’이 제정됐습니다. 이어 ‘갑을관계 기본3법’, ‘백화점 대형마트 납품업자 보호법’, ‘을 위한 계약법’ 등이 줄줄이 발의됐습니다.
을의 눈물을 닦아줄 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어차피 갑님(?)들은 법 밖에 있다’는 불신 때문이죠. 한국경제연구원이 2년 전 조사했는데요. 오너가족이 경영에 참여하는 기업집단의 호감도는 32%에 불과했습니다. 10명중 7명은 재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반(反) 기업 정서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는 59%가 ‘높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일자리 창출(25%)과 준법경영(24%), 사회공헌(12%)을 제치고 ‘윤리경영을 잘하는 기업’(43%)이 1위로 꼽혔습니다. 갑질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큰 지 짐작이 갑니다.
결국 갑의 횡보를 처단(?)한건 법보다 무서운 ‘병(丙)’, 바로 소비자입니다. 불매운동이죠. 그 영향력이 얼마나 되느냐고요? ‘땅콩회항’이 터지기 전 2014년 대한항공의 브랜드 가치는 6위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39위로 수직 하락했죠. 올해 초 22위로 반등하긴 했지만,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습니다.
남양유업은 2년 전 100만원을 넘나들던 주가가 80만원대로 밀려나 3년째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고요. 대림산업은 1분기 실적개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의 ‘팔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MPK는 이틀 만에(4~5일) 시가총액 157억원이 증발했죠.
“평판을 쌓는 데 20년이 걸리지만 이를 잃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미국 거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표상으로 꼽히는 워런버핏의 명언입니다. 오너의 도덕성을 강조한 말이죠.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지위를 악용하는 ‘갑님(?)’에게 그 어느 때보다 꼭 필요한 격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