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테크노밸리의 10년간 성과는 국내 IT산업 전체를 뒤바꿔놓았다. ICT의 중심은 강남에서 판교로 넘어온 지 오래고 제2판교테크노밸리가 구축되는 등 판교가 국내 IT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IT산업뿐 아니라 게임, 바이오, 벤처, 스타트업 등 신생기업들 역시 판교에 거점을 잡으면서 거대한 산업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판교 판교 입주기업이 1000개를 넘어서기도 했다.
입주기업이 늘어나며 판교 인근지역의 부동산이 들썩이기도 한다. 판교 주변의 용인, 광주, 수원, 성남 등의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며 노른자 땅으로 평가받고 있다. 판교지역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덤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판교를 찾아 창조경제밸리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박 대통령은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를 방문해 “창의적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결합한 창조경제를 일으켜 무한경쟁을 뚫고 살아남아야 한다”며 “전 세계 창업 인재가 모여드는 창조경제밸리를 조성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에 이투데이는 판교테크노밸리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 3명과 인터뷰를 통해 판교지역의 장점과 아쉬움, 미래에 대해 짚어본다. 인터뷰에는 한정길 경기도 과학기술과장과 양재혁 바이오협회 정보공유확산실 실장, 추현승 지능형ICT융합연구센터장이 참여했다.
경기도가 지난 10여년 간 정부의 도움 없이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경기도 과학기술과 한정길 과장의 소회다.
한 과장은 18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2014년만 해도 기업 수와 근로자 수는 각각 870개, 5만8000여명이었던 판교테크노밸리가 1년 만에 1002개의 기업, 총 7만여명이 근무하는 첨단혁신단지가 됐다”며 “최근에는 창조경제의 성공 사례로 국내외에 소개되고 있는 것은 물론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글로벌 진출거점 센터로 부각돼 해외에서도 방문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과장은 판교테크노밸리의 성공 요인을 △지속적인 연구ㆍ개발(R&D) 투자 △우수기업 전략적 유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원스톱 지원 △자연친화적 환경 등을 꼽았다.
그는 “당초 판교테크노밸리 정책 목표는 첨단기술 R&D 중심의 기업을 전략적으로 유치하는 것”이라며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입주기업의 50% 이상이 R&D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73%의 이상의 기업이 ICT(IT/CT) 기업, 10% 이상이 BT 관련 기업으로 구성된 전국 어디에서 볼 수 없는 생태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수기업 유치 전략 덕분에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SK케미칼, 포스코 ICT, LIG넥스원, NCSOFT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물론 다산네트웍스, 마이다스아이티, 크루셜텍, 한컴, 쏠리드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들이 약 200개 이상 입주해 있다”며 “이는 전체 1000여개의 입주기업 중 약 20%에 달하는 수치”라고 덧붙였다.
한 과장은 이같이 알려진 기업들 외에 한창 걸음마 단계인 스타트업을 위해서도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보고 여기서 시작한 후 해외로 나가고자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처음부터 타켓을 글로벌시장에 두고 나가야 한다”라며 “5000만 한국시장이 아닌 5억, 50억 인구를 바라보고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10년 뒤 조성될 제2판교테크노밸리인 판교창조경제밸리의 모습에 대해서도 전망했다. 한 과장은 “10년 후 조성이 완료되면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메카로 자리 잡으며 혁신과 성장을 멈추지 않는 벤처기업들이 끊임없이 몰릴 것”이라며 “무인자동차, 클라우딩 컴퓨팅, 빅데이터 등 세계를 선도하는 첨단기술의 거대한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재혁 한국바이오협회 정보공유확산실장은 판교지역에 위치한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주문했다. 현재 경기도 등의 지원책들은 ICT기업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융합기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양재혁 실장은 판교테크노밸리의 바이오 역사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되던 2005년 한국바이오협회(구 한국바이오벤처협회)는 경기바이오센터 건립에 대해 지원했다”라며 “한국바이오협회 주도하에 바이오벤처기업 22곳과 함께 ‘코리아바이오파크’건립이라는 국내 바이오기업 중심의 민간클러스터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특히 그는 바이오기업 중 크리스탈지노믹스의 성과를 성공 사례로 꼽았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2000년 7월 설립돼 구조기반 신약 연구ㆍ개발(R&D)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이다. 자체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타사의 신약 개발에도 적용하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2015 대한민국 기술대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양 실장은 “크리스탈지노믹스는 2005년에 코스닥시장에서 기술성심사를 통한 상장특례 기업 1호이기도 하다”며 “크리스탈에서 개발한 신약 ‘아셀렉스’의 매출이 올해는 70억원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판교테크노밸리의 아쉬운 점으로는 BT 기업과 IT 기업의 융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을 꼽았다. 바이오협회는 경기과학기술진흥원과 성남산업진흥재단의 도움으로 몇몇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기업 간 협력을 끌어내지 못 했다. 또한 주로 IT기업을 중심으로 단지가 조성되다 보니 우수 바이오기업이 판교에 진출하고 싶어 해도 실험실을 구축하는 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양 실정은 마지막으로 판교테크노밸리의 10년 뒤를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요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10년 후에는 보다 다양한 바이오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활성화해 세계적인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요람이 될 것”이라며 “융합형 기업이 많이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서는 바이오산업에 대해서 더욱 합리적인 규제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판교테크노밸리의 지난 10년을 돌아본 추현승 판교 지능형ICT융합연구센터장(성균관대 교수)의 한 마디다. 산학협력과 융합인재 양성에 힘써 온 추 교수는 그 누구보다 판교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잘 성장해온 판교 테크노밸리에 대한 감상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과제에 관한 관심이 더 높다.
그는 △네트워킹 강화 △실패에 대한 부담 해소과 규제 완화 △인재 및 양성 교육 시스템 △성장 가능한 콘텐츠(SW) △사업 검증을 위한 테스트베드 구축 등 판교테크노밸리가 풀어야 할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추 교수는 18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작은 크지 않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꾸준한 투자와 인내, 그리고 이를 믿고 동참해 준 기업들의 협조, 창업 열정 등이 오늘의 판교테크노밸리를 만들었다고 본다”며 “다만 이 같은 열정과 노력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네트워킹이 약하다 보니 융합을 통한 창업 아이디어가 소규모에 그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기업이 서로 사업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이 많음에도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장치와 프로그램이 없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이를 한 데 묶는 컨트롤타워는 물론 더욱 강화한 사업아이템 지원정책도 필요하다는 게 추 교수의 생각이다.
특히 이곳에는 스타트업이 많이 몰려 있는 만큼 추 교수는 재창업, 인재확보 등 다양한 애로 사항도 공감했다. 그는 “창업실패 시 재활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람(인재)이 없다고 호소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어 인재 양성 교육프로그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성균관대학교는 최근 판교 근로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기술연구는 물론 젊은 인재와 프로젝트리더급 교육을 통한 실무형 전문인재 양성, 기업컨설팅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추 교수는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판교 사업 인프라는 물론 지자체 지원책도 최대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스타트업에게 2번 이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처음 창업 실패율 90%, 재도전 시 성공률 50%, 세번째 도전 시 성공률 80%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사레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그는 “앞에서 언급한 5가지 과제가 실현된다면 글로벌 스타트업 성공 모델들이 쏟아질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판교도 미국 실리콘밸리나 실리콘앨리와 같은 세계를 리딩할 수 있는 첨단산업단지가 돼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