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메신저 라인, 탄생 비화는
‘라인(LINE)’은 왜 일본에서 성공했을까? 사실 일본 시장은 큰 수요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 글로벌 업체에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오죽하면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으로 불렸을까.
하지만, 라인의 성공 뒤에는 ‘감성’이 있었다. 라인은 쓰나미라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었던 일본인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쓰나미 이후 현지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쓰나미로 인해 통신과 교통이 끊기며 가족의 안부를 묻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자, 일이나 돈보다는 무엇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라인은 ‘소중한 사람을 이어준다’는 콘셉트를 앞세웠고, 현지에 빠르게 녹아들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일본에서 벤처기업 형태로 설립된 네이버의 100% 자회사인 라인은 지난달 일본과 미국 증시에 동시 상장을 결정하는 성과를 올렸다.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이 현지 증시에 상장되는 사례는 있었지만, 독자적인 기업 역량을 갖추고 독립적인 비즈니스로 성장한 해외 자회사는 사실상 라인이 처음이다.
라인 설립까지는 온갖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전에도 네이버는 일본 시장 공략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네이버는 1999년 설립 이듬해인 2000년 11월 자본금 1억 엔으로 네이버재팬을 설립한 뒤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01년 4월에는 네이버재팬 사이트(naver.co.jp)를 오픈하고 일본 시장 공략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일본 공략 5년째인 2005년 1월 31일 검색 서비스를 중단하고 커뮤니티 서비스만 유지하는 운명을 맞았다. 급기야 같은 해 8월에는 네이버재팬 사이트(naver.co.jp)도 폐쇄하고 철수하는 아픔을 맛봤다. 그러나 일본 시장 철수 2년을 갓 넘긴 2007년 11월 네이버는 다시 일본법인을 설립했다. 물론 재도전은 녹록지 않았다. 네이버재팬이 블로그를 서비스하던 라이브도어를 인수하는 등 다각적인 시도에도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점에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신중호 최고글로벌경영자(CGO)를 일본으로 급파해 전열을 재정비했다. 신 CGO는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 라인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리고 라인 출시 직전인 2011년 3월 일본열도를 공포에 몰아넣은 동일본 대지진 사건이 터졌다. 이 의장은 쓰나미로 통신이 끊겨 친구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보고 “소중한 사람을 ‘핫라인’으로 이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바로 라인 탄생의 시작이었다. 한 달 반 만에 라인을 만들어 공개하면서 일본의 ‘수요’를 재빠르게 충족시켰다. 메신저로서의 기본에 충실하도록 불필요한 기능은 걷어내고 최대한 심플하게 설계했다. 대신, 페이스북이나 와츠앱에 없었던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캐릭터 스티커를 넣었다. 통신비가 비싼 편인 일본에서 무료통화, 무료문자 서비스는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캐릭터 스티커는 간접적인 표현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론적으로 동일본 대지진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하던 사회 분위기와 사생활에 민감한 일본인들의 사적인 공간을 잘 파고든 셈이다. 이후 일본에선 명함이나 이메일을 주고받는 대신 라인 아이디를 교환하는 일이 일상이 됐고, TV나 노래 가사에도 라인이 언급됐다. 타국 제품의 진입장벽이 유난히 높은 일본에서 라인의 인기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이제 라인은 일본을 넘어 동남아 주요 국가로 가입자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라인은 현재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2억1840만 명(3월 기준)으로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위챗 등에 이어 메신저 순위 4위를 달리고 있다.
이달 미국과 일본 증시에 동시 상장하는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은 공모가 밴드를 2700~3200엔(약 3만1050~3만6800원)으로 결정했다. 라인은 이달 14일 뉴욕에서 2200만 주를, 15일 도쿄에서 1300만 주를 각각 상장할 예정이다. 또 초과배정옵션을 통해 525만 주를 추가 발행한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최대 1290억 엔(약 1조50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