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끝나지 않은 전쟁⑤] 1차 사료 배척한 채 떼쓰는 강단사학자들

입력 2016-07-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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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요서’설 비판하며 사이비 사학자로 매도…학문적 정치성 구성·요건논리의 정연성도 부족

허성관(전 광주과학기술원 원장)

계간지 ‘역사비평’ 2016년 봄호는 ‘기획1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주제로 세 편의 논문을 실었다.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은 이 세 편의 논문을 거의 요약 전재하는 형태로 대서특필했다. 이 과정에서 윤내현, 신용하, 이덕일, 복기대는 졸지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이비 역사학자로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필자는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자로서 3편의 논문을 정독했다. 이들 논문은 학문적 정치성(精緻性)과 논리의 정연성이 부족하며,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1차 사료와 선행연구 결과를 배척하고 있어 논문으로서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 재학 중이거나 갓 졸업한 사람들이 쓴 글이라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그대로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러니 이 글들을 게재한 ‘역사비평’ 수준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주장을 살펴보자.

낙랑군이 지금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왜 자꾸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주장은 거의 떼를 쓰는 수준이다. 예를 들면, 윤내현은 ‘고조선 연구’에서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 사료를 통해 낙랑이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세 명의 저자들이 한문 원전은 고사하고 윤내현의 이 책을 정독했는지 묻고 싶다. 낙랑군이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많은 중국 기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1차 사료로 비판하면 될 일이다. 그런 1차 사료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누구와 무엇을 위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기를 쓰고 나서는가?

실증적 학문 분야에서 통설은 영원불멸의 진리가 아니다. 그 시점까지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를 관련 학자들이 공감하면 통설이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거나 더 정치한 분석 방법을 활용한 결과, 결론이 달라지면 기존의 통설은 무너지고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낙랑군=평양’ 설은 강단 사학자들만의 통설인데 이를 비판하면 사이비 학자라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동북아 역사지도를 통설에 따라서 그렸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비난은 푸념일 뿐이다.

‘환단고기’를 지극히 혐오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강단 사학자들 주장에 대해서 안경전이 2005년에 종합적으로 반론했지만 재반론은 보지 못했다. 중국 사서의 내용과 일치하면 베낀 것이고 중국 사서에 없으면 조작이라는 주장은 최재석이 지적한 대로 전형적인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막가파식 주장과 같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사실의 진실 여부를 진지하게 연구해보는 것이 학자의 자세이다. ‘환단고기’가 강단 사학자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기에 이렇게 혐오하는가?

사이비 사학자들이 강연, 언론, 정치인들을 통해 대중을 선동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윤내현과 이덕일은 대중을 선동한 적이 없다. 강연 요청이 오면 선별해서 수락하고, 기고를 요청하면 글을 쓰고, 국회에서 증언을 요청해서 나갔다. 학자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달라는 요청에 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강단 사학자들이 언론사와 제휴해서 시민 강좌를 개설한 것도 대중 선동인가? 역사가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지식이다. 서고 속의 역사학은 유물일 뿐이다.

세 편의 논문 필자들은 민족주의를 경원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국수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민족사학 대 식민사학’이라는 구도 대신 ‘사이비사학 대 강단사학’으로 분류한 것도 민족이라는 용어를 싫어하는 반증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 민족사학이고 일제의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면 식민사학이다. 민족주의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으로 삼자는 사상이다. 신채호 선생에게는 민족주의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 이론이었다. 민족사관을 이렇게 경원하니 강단사학이 일제 총독부 사관을 옹호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세 편의 글 중에서 안정준의 마지막 주장을 보자. ‘낙랑군의 지배자는 중국인이고, 피지배자는 토착 조선인들이며, 조선인 관료들도 있었고, 조선인들은 중국인 지배에 협력했기 때문에 낙랑군이 420년 동안이나 존속할 수 있었다. 토착 조선인이 줄곧 지배층이었다. 낙랑군의 중국인과 조선인을 지배-피지배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보기는 어렵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아마도 낙랑군을 중국 식민지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 표현을 일제 강점기 조선에 적용하면, ‘조선총독부 지배층은 일본인이고, 피지배층은 조선인이며, 총독부에 조선인 하급 관리도 있었고, 친일파들은 여전히 조선의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당시 조선을 일제 식민지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와 같다. 섬뜩한 주장이다. 식민지 근대화론보다 더 조선총독부 통치를 합리화하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한사군 한반도설=식민사학’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보자. 이 주장은 결론이 같은데도 학파가 다르다고 떼를 쓰는 데 불과하다. 조선 후기 일부 실학파 학자가 식민사학자들과 같은 주장을 했다는 것이 그 논거다. ‘한사군=한반도’ 설을 차마 실학이라고 명명하지 못하고 이런 주장을 한 것인가? 조선 후기 일부 유학자들이 기자 존숭 차원에서 그렇게 주장했지만 그들이 지금 환생한다고 해도 강단 사학자들의 주장을 옹호해줄지는 의문이다. 선현들의 주장을 아전인수로 해석해서 매도하는 것은 후학들의 바람직한 학문 자세가 아니다.

강단 사학자들이 많이 있다. 첨예한 논쟁에 학문적으로 영글지 않은 사람들이 나서 떼쓰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강단 사학계의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허성관 전 광주과학기술원 원장
허성관 필자는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 제1분과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해양수산부 장관, 행정자치부장관, 광주과학기술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기일보’와 ‘한은소식’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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