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고객정보 유출 사실을 알리지 않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요구했다.”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의 해명입니다. 1000만 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해커들에게 빼앗기고도 두 달간 피해 사실조차 몰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죠. 해커가 보낸 메일을 받은 뒤에야 경찰에 부랴부랴 신고했다 하니,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안이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이 갑니다.
“왜 달러가 아니라 비트코인이지?”
북한이 인터파크에 요구한 건 달러, 즉 현금이 아니라 비트코인이었습니다. 이달 초 화류계에 몸담은 여성들의 신상을 폭로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강남패치’ 운영자 역시 사진을 내려주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았죠.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앱을 통해 이뤄지는 마약 유통도 비트코인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비트코인(Bitcoin)이란?
: 발행주체도, 물리적 형태도 없는 온라인 가상화폐. 이를 얻기 위해선 일반 PC로(1대) 5년이나 걸리는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어야 함. 호주의 컴퓨터 공학자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정체를 숨기고 ‘사토시 나카모토’란 필명으로 개발.
범죄자의 돈줄이 되고 있는 비트코인은 7년 전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내자 달러 약세의 대안으로 개발됐죠. 이 가상화폐는 2100만 개로 양이 정해져 있는데요. 전자지갑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P2P’ 방식으로 거래됩니다. ‘화폐’지만, 환율과 무관하게 ‘가격’이 변하는 이유죠. 가격이 얼마나 하느냐고요? 2009년 개발 당시 ‘1 코인=1달러(약 1120원)’ 하던 비트코인은 최근 650달러(72만9600원)를 넘어섰습니다.
이 익명성이 비트코인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비트코인 이용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고유의 식별번호(Unique identity)’를 통해 거래하는데요.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범죄자로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죠.
편의성과 신속성도 범죄 악용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국경이나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데요. 수일이 걸리는 자금 이체와 달리, 매매도 10분이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중개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페이팔(Paypal)이나 비자(Visa) 등 전통적인 금융네트워크를 통한 자금 거래보다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고요.
잡힐 리 없고(익명성), 거래도 편한 데다(편의성), 매매도 빠르고(신속성), 수수료까지 저렴하니(경제성) 현금을 쓸 이유가 없죠.
“정부는 뭐하는 거야? 제재안하고!”
비트코인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특별한 규정이 없습니다. 한국은행이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정부가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만 이뤄졌을 뿐이죠.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가 규제 마련에 속도를 내는 것을 고려하면 걸음마도 못 뗀 셈입니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비트코인 거래소들은 뭐냐고요? ‘소프트웨어 판매업’으로 등록된 ‘통신판매업자’에 불과합니다. 돈(가상화폐)이 오가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제제도 안 받는 이유죠.
“북한이 우리 국민의 재산을 노리는 외화벌이 해킹으로 사이버 테러 전술을 바꾼 것 같다.”
고객정보 유출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의 말입니다. ‘제2 인터파크 사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 비트코인 커뮤니티에는 ‘돈세탁’을 주제로 한 글이 심심치 않게 오르고요.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설마 윗분(?)들은 아직도 비트코인을 싸이월드 ‘도토리’나 카카오 ‘초코’ 쯤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