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힐러리 진영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할 만큼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9·11 추모식장에서 더위를 못 견디고 자리를 떠 차를 타는 순간 거의 졸도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경호원들이 힐러리를 부축하고 차 앞에서 휘청거리는 장면을 가리기 위해 막아섰지만, 힐러리가 맥없이 주저앉는 모습이 사람들 사이로 포착되었습니다.
곧이어 힐러리가 폐렴 진단을 받았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힐러리가 69세이기 때문에 고령자에게 위험할 수 있는 폐렴은 아니지만 다른 숨겨진 병이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힐러리는 이미 2년 전 탈수증으로 쓰러져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 증세와 혈액 응고 증세를 일으킨 적이 있고, 이로 인해 시력에 이상이 생겨 특수 안경을 낀 적이 있습니다.
힐러리의 건강 문제가 대두하자 절호의 기회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는 OZ라는 TV 건강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강이 최고 상태라고 강조했습니다. 힐러리보다 한 살 많은 70세의 트럼프는 콜레스테롤 약을 복용하고 몸무게가 평균보다 많이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힐러리는 서둘러 건강상태를 적은 의사 의견서를 발표하고 의사의 권고대로 며칠 쉬면서 폐렴을 회복한 뒤 밝은 모습으로 다시 선거 유세장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사람들은 불안을 감추질 못하고 있습니다. 힐러리의 폐렴 진단이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는 시기에 나왔고, 힐러리가 폐렴 문제 처리를 현명하게 하지 못했다는 지적 때문입니다.
힐러리가 폐렴 진단을 받은 후 그것을 곧바로 밝히지 않고 사건이 불거져 나올 때까지 숨긴 것에 불똥이 튀었습니다. 아주 극소수의 힐러리 측근 몇 사람만 알고 있었을 뿐 선거본부 최고 사령탑은 물론 부통령 러닝메이트 팀 케인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통령 후보가 대통령 후보의 폐렴증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금요일 폐렴 진단을 받고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48시간을 숨긴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가 폐렴 진단을 받았으면 즉시 공식 발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인데 힐러리는 폐렴증세가 알려지면 선거에 불리하다는 생각으로 극비에 부친 것이 결과적으로 일을 크게 만든 것입니다. 힐러리는 폐렴증세가 경미한 것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밝히지 않은 것이지 고의로 숨긴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힐러리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고 있는 정직성과 투명성, 판단력의 문제로 비약했습니다.
건강 문제가 대두하기 전 이메일 문제, 클린턴재단 문제가 다시 불거져 힐러리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FBI가 추가로 발표한 이메일 조사 보고서에서 힐러리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타나고, 힐러리가 국무장관 재직 시 클린턴재단 관계자가 국무부 관리에게 재단 기금 기부자와 연결해 달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이 밝혀지고 부도덕한 나라의 깨끗하지 못한 돈이 기금으로 유입된 것이 문제가 되면서 힐러리가 클린턴재단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힐러리의 말 실수가 이슈화되었습니다. 힐러리는 LGBT(레스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가 마련한 모금 연설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절반이 개탄스러운 사람들 바구니에 속해 있으며 이들은 인종주의자, 동성애 공포 증세자, 성차별주의자, 외국인 혐오자, 이슬람 혐오자”라고 비판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구제 불능인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 ‘절반’을 ‘개탄스러운 사람들의 바구니(basket of deplorables)’ 속에 담고 ‘구제 불능자들(irredeemable)’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힐러리는 ‘절반’이라고 한 표현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유감을 표시했으나 ‘개탄스러운 바구니’는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힐러리가 말 실수를 한 날은 바로 폐렴 진단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트럼프는 힐러리가 건강 문제로 휘청거리던 날 힐러리가 쾌유하기를 바란다는 짤막한 논평만 할 뿐 건강 문제는 그대로 두고 개탄스러운 바구니 발언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성실한 시민들을 경멸한 클린턴은 공직자가 될 수 없는 결격자”라고 공격했습니다. 사람을 바구니 속에 집어넣는 표현도 꼬투리가 잡혔습니다.
민주당이 힐러리가 폐렴을 치료하고 선거운동이 정상적인 궤도로 복귀되었는데도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트럼프가 완만하지만 계속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런 악재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금성 무공훈장을 받은 무슬림 가족을 공격하는 ‘키즈르칸’ 사건이 일어난 후 트럼프 지지도는 급격히 추락해 힐러리와의 지지도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지고 트럼프가 무너졌다는 진단까지 나왔습니다. 힐러리 진영은 시간 끌기 작전으로 대세를 굳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트럼프는 태도를 바꿔 써 준 원고를 읽는 ‘텔리프롬터’ 연설을 하고 성질을 조금씩 절제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멕시코 방문이라는 카드를 사용하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는 문제를 논의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데에서 점수를 받았습니다.
트럼프의 지지도가 아주 완만하게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힐러리와의 표차가 4%포인트 선으로 좁혀진 상황에서 건강 문제와 말 실수가 동시에 발생한 것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재 두 사람만 놓고 지지도를 물을 경우 힐러리가 1~2%포인트 앞서고, 리버태리안 파티(Libertarian Party)와 그린 파티(Green Party) 후보자 등 네 사람을 놓고 지지도를 물으면 힐러리와 트럼프가 동률이고 트럼프와 힐러리가 서로 1~2%포인트 앞서는 상반된 여론조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관심의 초점은 트럼프의 상승세가 여기서 멈춘 것인지, 아니면 아직 상승 추세에 있는지입니다. 트럼프 상승기류가 멈추었다면 26일에 있을 첫 토론회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고민은 두 후보 모두 지지자들의 열성과 호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두 후보 지지자들의 40% 이상이 자신의 후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투표를 포기할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힐러리는 신뢰성과 호감도를 높이고 샌더스 지지자들 가운데 젊은이들이 그린 파티나 리버태리안 파티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들 젊은 이탈자들을 붙잡지 않으면 힐러리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새로 구성한 트럼프 참모들은 트럼프가 성질을 절제하고 막말을 자제하면서 대통령이 되기에 너무 무지하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책을 체득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힐러리 쪽으로 몰린 멕시칸, 흑인, 무슬림, 아시안 등 소수 인종 가운데 일부를 끌어오는 전략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승패는 ‘숨겨진 백인들’의 마음에 달릴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트럼프 지지자는 학력과 생활수준이 낮은 백인 근로자들로 분류되고 있지만 교육수준이 높은 중상층 백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으나 겉으로 지지를 표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면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트럼프를 지지하느냐고 매도당할 수 있으므로 의중을 숨기고 있습니다.
심중을 알 수 없는 이들 백인들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변화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불법 체류자나 무슬림 극단주의자 테러 문제, 경제 문제에 트럼프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으나 트럼프의 인격과 성품이 도마위에 올라, 자칫하면 인종주의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숫자가 얼마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 표심이 얼마나 투표장으로 가서 트럼프를 찍느냐가 대세를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