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면 고향인 안성으로 돌아가 중학교 수학 교사로 조용히 살고 싶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고 떳떳하게 조선인임을 밝히면서도 일본군 중장에까지 올랐던 홍사익의 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필리핀에서 B급 전범으로 생을 마감해 물거품이 됐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육군대학을 거쳐 조선인 평민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 중장이 됐던 홍사익(洪思翊, 1887.2.2~1946.9.26)은 지휘관으로 파견될 때마다 “나는 조선인인 홍사익이다. 지금부터 천황폐하의 명령에 의해 지휘권을 갖는다”라며 조선인임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 육사 동기인 지청천(池靑天, 1888.2.15∼1957.1.15) 등이 독립군으로 활동하면서 홍사익에게 자주 가담을 권유했지만, 그는 일본군에 뼈를 묻기로 결심하고 독립군 가족의 생계를 보살펴 주는 등 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독립군에 가담하지 않는 것은 나를 알아준 일본에 대한 의리 때문만이 아니다. 조선인으로 최고 지위에 있다는 내가 배신한다면 병사들은 물론 징용된 노무자들까지 보복을 받을 것이다. 나만을 생각해 그런 경솔한 짓을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홍사익은 B급 전범이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한 채 천추의 한을 품고 갔다. 그가 숨지고 1년이 지난 1947년 일본 외무성은 그의 유품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손목시계와 담배 파이프, 안경, 수첩, 저금통장 등이었다. 또 다른 유품인 순종이 내린 군인 칙유칙서와, 다이쇼(大正, 1879∼1926) 천황이 황태자 시절에 선물한 은 손목시계는 후일 전달됐다.
1966년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합사되고 국내에선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기록돼 있지만 최근 그의 활동에 대해 재평가, 재조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