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전 예측을 뒤엎고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뉴욕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 ‘힐튼 미드타운 호텔’의 연회장에는 8일(현지시간) 밤 수천 명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하는 대형이벤트가 열렸다. 이곳은 트럼프의 거처가 있는 맨해튼 5번가 트럼프 타워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행사장을 꽉 채운 지지자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선거 슬로건이 쓰인 피켓을 들거나 공화당을 상장하는 빨간 모자를 쓰고 트럼프의 당선을 자축했다.
이날 대이변을 연출한 주인공 트럼프는 지지자들 앞에서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지만 모든 이와 다른 나라들을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경선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쟁쟁한 후보들을 밀어내더니 온갖 막말과 음담패설 음성 공개 파문에도 아랑곳없이 2016 대선의 최후 승자가 됐다. 그에 대해선 부동산 재벌이자 유명 프로그램의 진행자란 이미지가 강한데, 정작 그의 사적인 면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부유한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체로 사업을 일으켰고 어머니는 자선사업가였다. 소년기에 트럼프는 퀸스에서 자랐다. 13살까지는 아버지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포레스트힐스 지역의 일반 학교에 다녔으나 품행이 불량했다고 한다. 특히 자기 주장이 강했다고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을 때렸는데, 그 이유가 선생님이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이를 계기로 트럼프의 아버지는 그를 명문 사립고교인 뉴욕밀리터리아카데미로 강제 전학시켰다. 의외로 트럼프는 뉴욕밀리터리아카데미의 엄격한 교육 환경에 잘 적응했다. 그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이 학교는 나를 어른스럽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공격적인 성향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학교는 작년에 재정난을 이유로 개교 126년 만에 문을 닫았다.
트럼프는 1964년부터 2년간 브롱크스에 있는 포드햄대학에 다닌 후 부동산 전문학과가 있는 몇 안되는 대학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와튼스쿨에 다녔다. 와튼스쿨은 존 스컬리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코스메틱업체를 창업한 에스티 로더의 아들 레너드 로더, 정크 본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이클 밀켄 등 걸출한 경영인을 배출한 미국에서 손꼽히는 비즈니스 스쿨이다.
트럼프는 “학위는 아무런 증명도 되지 않지만 일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이걸 중요시한다”고 자서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아버지 슬하에서 부동산 관리 일을 배웠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경험보다는 학위가 통용된다는 걸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와튼스쿨에 진학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엘리자베스 트럼프 앤 선’에 입사해 부동산 관리 및 투자 등을 몸소 배웠다. 그가 부동산으로 큰 성공을 거둔 건 1970년대다. 오피스빌딩 개발과 호텔, 카지노 경영 등에 나섰는데,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권 하에서 경기가 살아나자 큰 혜택을 입었다.
그의 탁월한 쇼맨십은 자선 사업가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부동산 관리 일을 배웠는데, 임대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세입자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오물을 뒤집어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그 일을 계속할 순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자선 사업가였던 어머니처럼 대단하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구직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며 멘트를 날리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도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이민자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건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거 그는 연방주택공사가 압류 물건으로 내놓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주택단지를 헐값에 사들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주민이 이민자에다 극빈곤층으로, 집세를 떼먹고 야반 도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었다. 이에 트럼프는 가재 도구를 싣는 트레일러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물론, 불성실한 세입자가 나간 집에 안정적인 세입자를 받기 위해 주택 수리에만 80만 달러를 써야 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거액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건 그가 ‘몹쓸’ 사람도 부릴 줄 안다는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어빙이라는 남자를 주택관리인으로 뒀다. 어빙은 허풍선이에다 사기죄로 여러 번 감옥엘 드나들었던 인물. 트럼프 역시 이를 잘 알았다. 그럼에도 어빙을 채용한 건 그가 사기꾼이기 때문에 부하 직원들의 부정 행위도 잘 잡아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의 엉뚱한 판단은 적중했다. 트럼프는 어빙 덕분에 골치를 썩이지 않고 다른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빌 게이츠는 뛰어난 경영자이지만 브랜드 수는 부족해.” 트럼프가 운영하는 부동산과 프로젝트에 전부 ‘트럼프’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일각에선 졸부 근성이라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한때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가 부활한 만큼 자기과시욕이 대단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