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천고마비’와 함께 배운 말이 ‘등화가친’이다. 가을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밤에 등불을 가까이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때 대관령 아래의 우리집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방마다 등잔불을 켜놓아 그 말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밤에 등잔불을 가까이하는 일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가까이할 때 말고는 없었다.
실제로 그 무렵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의 산골 생활이 그랬다. 해가 져서 어둑할 때 저녁을 먹고, 학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또 어머니가 바느질을 할 때 등잔을 사용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텔레비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라디오조차 귀했던 시절, 해 떨어진 다음에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 말고는 없었다. 독서가 우리에게 공부가 아니라 놀이였던 시절이었다.
여러 자식을 키우다보니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제각기 책을 사주지 못했다. 위로 형들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나와 동생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여러 자식이 함께 보라고 두꺼운 책 다섯 권으로 묶여 있는 ‘삼국지’ 한 질과 또 머리가 굵어진 두 형을 위해 ‘한국문학전집’을 사오셨다.
삼국지는 아버지도 다시 읽고, 형도 읽고, 마땅히 읽을 만한 동화책이 없는 나 역시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읽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형들처럼 한국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책상에 앉아 읽기도 하지만 방바닥에 엎드려 읽을 때가 많았다. 저녁이면 머리맡에 등잔을 놓고, 가슴에 베개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다보면 책갈피를 한 장 두 장 넘기는 아주 작은 바람결에도 등잔불이 흔들리고, 때로는 조금 세게 내쉬는 콧김에 불이 꺼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작은 등불 아래에서 그 등불과 가까이하며 한국문학전집을 읽었고, 시내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온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지금도 나는 열서너 살 시절 내 콧김과 입김에 흔들리던 등잔불 생각을 한다.
그런 추억과 함께 그 시절에 읽던 책 생각이 난다. 그래서 며칠 전엔 그 시절에 읽고 크게 감동받았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짧은 소설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모파상과 체홉의 단편집을 옛날 기분으로 돌아가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린 시절처럼 머리맡에 등잔불을 밝히고 하는 독서는 아니지만, 이 밤 누군가 나와 함께 다른 목적 없이 오직 그것의 향기에만 빠져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아마 그 밤,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온다. 긴긴 겨울밤 다른 여가선용 거리도 많겠지만, 책을 읽는 밤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밤이 아니겠는가?